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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l 18. 2021

금요일만은 제발 내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묻어가고 싶은 직장인의 금요일.

"오늘은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였으면 했는데 어김없이 일이 터지네요."

"그러니까요. 오늘은 제발 제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랐는데... 출근하자마자 이름이 불려서 좌절했어요."

"진짜요? 밍블님도 그렇다고요? 밍블님은 일하는 걸 굉장히 즐기시는 줄 알았는데요?"

"제가요오오오오오오? 무슨 말씀이세요.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얼마나 바란다고요. 이름이 불릴 때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직장에서 나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아무개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일을 못 해서 매일 괴로워하고 잔소리를 듣는 것도 싫지만 일을 잘해서 일이 몰려오는 것도 싫고 동료의 시샘을 받는 것도 싫다. 적당히 시키는 일 잘하고 무난하게 하루하루 묻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는데 연차가 쌓이니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나 보다. 나의 소소한 이 바람들이.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은 오늘의 날짜와 학생들의 번호를 연결해 질문에 답을 하게 했다. 오늘이 18일이니까 18번! 혹은 8번! 이런 식으로 호출을 하고 문제를 풀게 하는. 그러니 수업을 시작하면 8번으로 시작할지 18번으로 시작할지에 따라 내 차례가 오느냐 안 오느냐를 계산하느라 바빴다. 50분을 긴장하거나 편안히 수업을 듣거나 둘 중 하나가 내게 너무나 중요했었으니까.


하아. 하지만 난 이제 학생이 아니고 신입사원도 아니다. 내게 일이 안 떨어지기만을 바랄 수가 없고 내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것은 내 역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만은 공짜로 주어진 것처럼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매일 품는다. 어제가 그런 날이 아니었으니 오늘은 그래도 되겠지? 하는 마음. 월급 루팡이라고 비난해도 오늘 하루만큼은, 특히 금요일만큼은 더 간절해지는 마음이다.

    

파티션 아래로 몸을 좀 낮추고 내가 해야 할 여러 개의 과제 중에 다음 주로 미뤄도 되는 것들을 체크한다. 금요일을 가뿐하게 즐기려다 되레 수습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 신중하게 살펴보면서. 내 일을 미루는 과정에서 어떤 업무가 중요한지, 미뤄도 되는 일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어려웠던 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늘 바쁘고 늘 힘들었던 때. 다른 사람은 쉽고 편안하게 잘 감당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일에 치여있는지 몰라 늘 불만이었던 내 모습. 왜 이렇게 내게만 일이 몰리는 거냐는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허덕이던 때 말이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그때와 너무 똑닮은, 책상 위에 문서를 어지럽게 펼치고 정신없는 후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은 우연일까?


일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대상인데, 일을 잘하는 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삶을 사는 것과 별개의 문제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당장 눈앞의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고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을 잘한다는 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일하는 마음. 제현주]          


오늘만큼은 월급 루팡이 되어 조용히 글을 쓰거나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의 일이 눈에 들어오다니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정신없는 후배의 일을 하나쯤 덜어주기로 한다. 바로 '일하는 마음'의 이 부분이 생각났으니까. 제현주 님의 일하는 마음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밑줄을 그었는지 모른다. 어쩜 이렇게 분명한 언어로 일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과 존경을 가득 담아 찬양했던 책의 딱 부러지는 마음과 다른, 유독 촉촉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들이었다.


 그래, 후배의 일 하나쯤 더 한다고 나의 오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 한결 인간적인 월급루팡이니까 양심에 덜 찔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웃음)


그러니까 금요일은 상사에게 이름 불리는 날이 아닌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날이 되길 바라본다.  미친 듯이 노력해도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 그들의 열심을 과거의 나를 보듬듯 알아주는 하루. 단, 나의 도움을 상사가 모르게! 내 이름은 여전히 불리지 않게 몸을 낮추고 말이다.


어찌 됐든 이름 불리는 것은 너무 스트레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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