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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04. 2021

내가 나를 위로하는 법

짜증을 좀 표현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별 쓸데없는 것 까지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랄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즐기면서 하려던 와중 어제는 좀 화가 났다. 좀 아니고 많이? 속으로 참을 수도 있었지만 시원하게 속풀이를 했다. 겨드랑이 땀 차게 돌아다니며 일을 했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새로운 일들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일들은 긴급한 일들이 가득 쌓인 지금 하기엔 생산성 측면에서 현저히 효율이 떨어지는 일들이었다. 상사들만 궁금한 원론적인 이야기, 자신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관계법령 모음, 수립계획, 뭐 이런 것들. 궁금하면 자기가 인터넷 좀 찾아보라지. 기가 차는 일들이었다.


나의 '지랄' 발언에 함께 있던 직원이 깜짝 놀라길래 다시 수줍게 웃어 드렸다. 겉으로 짜증을 낸 건 처음이다. 임대업체에 둥지를 튼 비둘기 퇴치를 해달라고 했을 때도, 화장실 막히게 한 범인을 색출해 달라고 했을 때도 웃으며 일했더니 요구사항이 점점 많아졌다. 한두 가지 처리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과연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퇴근을 못하고 앉아있다가 또 한마디를 내뱉었다. "업무시간에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네.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 퇴근을 하려던 옆 직원이 멈칫했다. "하루 종일 고생하시긴 했죠."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닌데 서로 멋쩍게 웃었다. "제가 오늘 좀 투덜거렸죠?"


이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인데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생색을 냈다. 그러니 좀 나았다. 일이 쏟아져도 결국 퇴근을 했고 어제 해야 하는 일들을 다 끝냈으며, 적당히 미룰 수 있는 일은 내일로 미루기도 했다. 우아한 백조처럼 ' 이 정도 일들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마든지 처리해 드릴게요.' 적당히 괜찮은 척할 수도 있었지만 어제는 짜증을 낸 내가 더 마음에 들었다. 조금 질해 보였을지라도 내 내면은 건강해진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한 뒤 집에 돌아오면 '친절의 가면' 혹은 '뭐든지 괜찮은 척하는 가면'을 쓰고 돌아다닌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수많은 소셜 미디어에 전시되는 자아의 멋진 이미지를 가꾸고 수집하느라 정작 우리에게는 내 마음의 안부를 물을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정여울]


출근할 때 항상 음악을 듣는다. 회사에 도착하면 직장의 시간표대로 돌아가고 퇴근을 하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계가 돌아가니 출퇴근길에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떠올리고 싶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이어폰은 외부세계를 차단하는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이다. 온전한 나를 생각하면서 나와 내 주변의 존재를 생각하고 안부를 물어야지 했다. 출근할 때는 늘 그랬다. 그런데 외부 세계와의 차단은 이어폰을 빼는 순간 끝나고 만다. 출근길 다짐이 내 자리에 도착하는 순간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매일 아침 그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반복하는 다짐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매일 나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은 너의 안부까지 묻게 되는데 그런 날 참 행복을 느낀다. 이 와중에 내가 이만큼 더 나아갔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아직까지 가면을 소유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한 그 가면을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뭐든지 괜찮은 척'하는 가면을 계속 쓸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괜찮은 척해야 기분 좋게 일할 수 있고 '친절의 가면' 역시 원활한 조직생활을 위해 적당히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면 챙기느라 그 안에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된 나를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출퇴근길이 멀어서 늘 피로했다. 조금만 더 가까우면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나의 안부를 물을 시간이 있다는 것, 가면과 나를 분리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 욕한 나를 괜찮다 여기는 시간이 있다는 것. 20,30대의 정여울 작가님이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나는 시원히 하고 있다는 것.


결론은 욕 좀 하고 생색도 좀 내면 한결 나아진다는 것이다. 요 며칠 알게 된 가장 간단한, 나를 위한 위로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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