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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l 03. 2021

적정거리가 슬프고 야박하게 느껴져

글에는 마음을 넘치게 담아 나의 어제를 기록합니다.

'균형 있게 한 달 살기'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번 줌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으로 모임을 만든 것은 아니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되, 삶을 보다 균형 있게 꾸려가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모집이랄 것도 없이 그냥 제 지인 중 편하면서 궁금한 사람, 두 명을 초대했고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로 부담 없이 만나기로 했죠. 2월부터 시작했으니 총 5개월의 이야기를 나눴네요.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수다를 떠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이 얘기했다 저 얘기했다 목적 없는 수다가 아니라, 내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체크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 달라요. '균형 있게 한 달 살기'라고 했는데 무엇과 무엇의 균형인지 궁금하시려나요?



일과 가정, 그리고 신앙입니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주축이 되는 부분이죠. 모두 '일'을 하고 있는데 '직장'에 한정된 것은 아니고,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어요. 사실 모임을 하면서 두 분에게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모임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 모임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될 만큼 큰 일이었는데 그래도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이 모임이 바로 그런 목적이 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상황에 누구에게든 이야기할 곳이 되어주면서, 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요. 내 삶에 균형을 잡으려고 모임을 만들었으면서 상황에 따라 무너지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저는 사실 이곳에서 힘을 얻으려고 모임을 열었습니다.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에너지를 얻고 싶었던 거죠.


어제 6월의 삶을 나눴어요. 늘 편안한 미소로 '으이구, 잘 지냈어?' '아유, 힘들었겠다'라는 말로 저의 오랜 상담자(실제 직업도 상담자)가 되어준 언니가 오랜만에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날.


"언니는 언니의 일에서 어떤 것을 이루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뭐예요?"

"음... 나는 욕망이 별로 없어. 그냥 지금 이대로 너무 만족해. 희한하지? 나는 좀 이상한가 봐-"

"..."

"언니, 나랑 영진이는 욕망이 있어서 그것이 잘 안될 때 힘든 거거든요. 언니는 그럼 힘들 때가 없어요? 욕망이 없으면 좌절되는 마음도 없는 거 아닌가? 언니는 언제가 힘들어요?"

"나는. 일 자체가 힘들어. 상담. 상담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나에게 넘어오니까 그 사람에 대한 꿈을 꾸기도 하고... 그 사람이 나를 인생의 의지할 단 한 사람으로 생각하니 너무너무 부담스러워."


우리는 앞서 영향을 끼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언니 말을 들으니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갑자기 실감이 났습니다. 너무 대단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그 '대단함'에 한없이 눌리는 마음. 늘 온화한 얼굴로 화면에 나타나는 언니에게 이 모임의 필요가 있을까? 사실 궁금한 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언니는 매번 이 모임이 있어 너무 좋다고 했고 그 마음을 어제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언니가 언니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언니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니까.


우리의 적정거리가 너무 안전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던 밤.


다시 한번 적정거리를 이야기하는 지금, 사실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딱 붙어 있고 싶어지거든요.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해 다 알고 싶고 내 손안에 쥐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어요.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종종 시무룩해집니다. 시간이 쌓이면, 이야기가 쌓이면, 당연히 마음도 쌓일 거라고... 자꾸만 속도를 내고 싶은 나에게 계속 이야기해줍니다.


적정거리, 안전거리를 유지하라고.


그래야 정말 힘든 날, 서서히 속도를 줄여 갓길에 댈 수 있다고. 방향을 바꿀 때 놀라지 않을 수 있다고.


친구의 힘든 날, 화면을 통해 벌게진 눈을 바라보는 일,

편안한 표정 너머 큰 부담을 안고 있는 언니가 그래서 계속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도 뜨거운 눈물과 겸허한 존경을 공유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를 내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이 아니라 들어주고 인정해 주는 마음이 적정거리 아닐까요?


언니에게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도 이런 적정거리를 가질 수 있기를, 무관심과 다정한 관심 사이에서 조급해하지 않는 내가 되길 기도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글에선 마구 좋아하는 마음을 그대로 담아 씁니다. 잊고 싶지 않으니까요. ^^


어쩐지 마음을 비울수록 채워지는 기분이 참 근사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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