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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Mar 18. 2024

지금의 나를 기억하는 글쓰기

7주간 진행했던 겨울 글쓰기를 마치며

지금의 나를 기록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23년의 내가 24년과 다르지 않게 기억될 것 같았다. 물론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내 삶의 좌표가 달라진 지금 이 시기의 마음과 생각을 솔직하게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는 언제나 평온했던 사람처럼, 감정의 기복이란 없는 사람처럼 시치미 뗄 것 같았다. 최근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을 읽었다. 켄턴양이 스티븐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스티븐스 씨. 당신이 그런 생각을 작년에 털어놓았다면 저한테 얼마나 힘이 되었을지 알기나 하세요? 제 수하 처녀들이 해고되었을 때 제가 얼마나 심란했는지 뻔히 알고 계셨잖아요. 당신이 한마디만 해주었어도 큰 도움이 되었을거예요. 말해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죠?”          




맞다. 나는 많은 날 ‘시치미를 떼고’ 살았다. 스티븐스가 그랬던 것처럼 내게 대단한 직업의식이 있는 것처럼 또는 중요한 가치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그 밖의 일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짐짓 쿨한 척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보니 또 어느 정도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이제야 질척이는 사람이 되고 싶고 감정 기복을 느끼며 헤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순간마다 멱살을 잡고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열정을 다하며 살고 싶다. 아마도 내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나름의 끓어오르는 순간들을 기록하며 미미하더라도 열정을 보이고 싶은가보다.  



        

공무원 퇴사자, 이제 슬슬 그 프레임을 벗고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쓰는 사람으로 걸어간다. 내가 타인의 삶을 읽고 이해하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다만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순간 마음을 다한다. 그러므로 7주의 글쓰기는 기쁨과 슬픔 모두 온전히 받아들이자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내게 올 자극이 얼마 없는 것 같아 초조하고 내가 누리는 기쁨이 아주 사소한 것인 것 같아 샐쭉해지기도 하지만 그것대로 분투하며 자극을 얻고 기쁨을 눈두덩이처럼 굴리기로 한다.    



      

순간의 감정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7주간 사람이, 그리고 책이 여전히 함께 했다.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이 글쓰는 시간을 통해 내게 들어왔다. 마음을 넣어 글을 나눠 준 모두에게 감사하다. 글을 쓰는 순간 그들의 슬픔이 조금은 날아가고 기쁨은 삶에 더 진하게 스며들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시치미 떼는 삶이 아닌, 솔직한 자신감으로 촌스럽게 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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