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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pr 16. 2020

내 안의 이중성

친정과의 합가 생활, 먹는 이야기.

아이고, 족발 먹는데 근 10만 원이네?


얼마 전부터 계속 족발을 이야기하시던 아빠, 보쌈을 말씀하시던 엄마의 의견을 따라 배달 앱을 보면서 나름 저렴한 곳을 고르다 보여드린 곳의 가격을 보며 엄마는 말했다.


"무슨 10만 원 이야? 6만 4천 원이지. 내가 살 땐 가격 신경 쓴 적 없으면서 본인이 살 때는 6만 원이 10만 원이 되네?" 나는 날을 세워 말했다. 아니 이건 엄마, 아빠가 먹고 싶어 한 거니까 엄마가 사야 한다고 명확히 선을 긋기 위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엄마, 엄마는 이거 처음 사는 거 알지? 우리는 엄청 여러 번 샀고"

"무슨? 지난번에 치킨 샀잖아."

"치킨 한 마리? 우리는 그전에 치킨 두 마리에 감자, 맥주까지 엄청 썼거든?"


대화가 점점 더 치사해진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보쌈도 샀고, 얼마 전 분식으로 우동, 알밥도 내가 샀고, 주말에 쌀국수 배달도 우리가 계산했어. 또 뭐가 있지?'

속으로 생각하던 리스트도 결국 내 입 밖으로 줄줄 나오고 말았다.



한 식탁에 다 두기도 힘들어 먹을 때도 나눠서 먹어야 한다.


우리 4 식구는 한 달 반쯤 친정과 합가를 했다.

나는 신랑과 맞벌이이고 현재는 휴직 중이지만 곧 복직을 해야 하고 아이는 학교를 보내야 한다.

초등학교는 유치원과 다르다는 생각에 여러모로 고민을 했는데 친정엄마도 그냥 아예 한집이 편하겠다고 하시고 우리도 그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실 어쩌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합가를 결정했다.

합가를 하기 전에도 친정은 1층 우리는 3층 한 건물 안에서 생활했기에 어느 정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자만한 것이 실수였다. 한 건물 안에 지내는 것과 한 집에서 지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인데.



배달앱을 쓰면 앱에서 결제를 하는 방법과 만나서 하는 결제가 있다. 보통은 앱에서 결제를 하지만 나는 이번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굳이 만나서 하는 결제를 택했고 배달이 오자 엄마를 불러 카드를 받아냈다.

결국 그렇게 먹은 족발과 보쌈은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음식의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합가를 하고 매주 엄마와 싸웠다.

대부분 먹는 것, 그 이하로 치사한 것들이었지만 아주 오래전 나의 상처까지 드러나는 치명적인 일들이었다.

나는 매주 펑펑 울었다.

억울해서 울었고 치사해서 울었고 나의 쪼잔함에 치가 떨리면서도 전혀 쿨해지지 못하는 짜증남에 울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내 마음을 어떻게 정돈해야 할지 몰랐다.

어서 복직을 해서 이 꼴 저 꼴 안 보고 그냥 미안한 워킹맘으로 지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직장동료들에게 슬슬 연락도 취해봤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점심은 거의 내가 준비하는 걸로 되어 있었나 보다.

분명 친정부모님은 점심을 안 드셨었는데 나와 아이들만 먹는 것이 어색해 늘 같이 준비해 먹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그 날은 내가 나오지 않자 엄마는 슬쩍 내 방에 들어와 나를 살폈다.

쳇. 준비하지 않을 거야.

나중에 애들만 따로 줘야지. 나는 또 한 번 치사한 생각으로 꿈쩍 않고 있었다.

아. 정말. 너무 치사하다. 이까짓 점심 차리는게 뭐라고... 남들에겐 비싼 밥도 척척 사면서 가족에겐 차리는 것에도 이렇게  

인색한 사람이었나?

고작 밥 한 끼 문제로 매일 이렇게 저울질하다니.

내모습이 머쓱해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나와서 파스타를 준비했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시판 소스를 사서 면만 삶아 남은 야채와 소시지, 아이들 좋아하는 바지락을 넣은 것.


내가 나오자 엄마는 뭘 도와줄까 하며 옆에서 거들었다.

그 순간 새삼스럽게도 눈물이 날뻔했다.

엄마는 계속 내 눈치를 봤던 것이다.

점심을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돼서 안 먹는다고 했었지만 주부들은 알 것이다. 삼시세끼 차리는 게 너무 귀찮아서 그냥 한 끼는 귀찮음이 배고픔을 이기는 상황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지만 아이가 있기에 아이들을 위해 매끼를 차리는 것일 뿐이었고 내가 엄마가 된 이상 친정엄마는 더 이상 나를 먹이는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나와 같은 엄마가 아니라는 현실이 그렇게 다가왔다. 오히려 이제 내가 우리 엄마 아빠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직시하게 된 순간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자란 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고 부모님은 피부양자가 되는 것.

그런데 우리 부모님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물론 아닌 부분도 많다. 경제적으로도 연금을 받으시고 우리가 도움받을 때도 많다.

하지만 이제 마음가짐을 조금 다르게 가져야 이 치사한 싸움을 끝낼 것 같다.

 

나는 결국 소모전에 지쳐 아이 한 명만 데리고 집 근처 카페에 다녀왔다.

사실 이런 외출도 눈치 보이는 현실이 또 답답하다. 친정엄마는 카페 나들이를 좋아하는 분인 데다 어디든 가고 싶어 하는 소녀 감성의 할머니이기에 빼놓고 갈때는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하지만 온 가족이 카페를 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번잡하며 돈은 또 얼마냐. 그냥 나 혼자 콧바람. 그것이 이렇게 어려워지는 합가 생활.


마음가짐을 다르게 가지려 해도 계속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최소한 남에게 잘하는 만큼만이라도 가족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생각뿐인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대관절 가족이란 게 뭐길래 자꾸 짜증이 나는 걸까?

요즘 나의 민낯은 이렇게 가족 앞에서 쪼잔함의 연속이다. 내일은 좀 나아지려나? 마음 한 켠을 잘 접어본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세팅하기 위해 이기적인 딸의 모습을 접어보려 노력한다. 그냥 그렇게  작은그릇을 넓혀가려는 시도를 매일 해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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