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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n 01. 2020

꽃의 침묵

나를 위로하는 법,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면

한때 나는 타샤의 정원을 꿈꿨다. 

타샤 할머니의 넓은 대지, 자유롭게 피어난 들꽃과 계절에 맞는 열매. 할머니의 목가적인 분위기와 앞치마 등.

하지만 좁디 좁은 대한민국에 나는 그만한 땅이 없거니와 어마어마한 대지를 경작하고 가꿀 노동력, 바꿔말해 자본과 체력이 없으니 베란다 정원이라도 잘 가꿔보자 라는 생각에 하나 둘 초록식물들과 예쁜 꽃들을 베란다에 들여왔다. 



식물을 잘 모르면서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잎이 두툼하고 털이 보송보송 나있으며 잎보다 자그마한 꽃이 수줍게 피어있는 바이올렛 3개를 사와 책상 창가에 두고 정성으로 키웠었다. 나는 당시 식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왜 같은 화분을 3개나 사와 알아보지도 않고 단지 정성으로만 꽃을 대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정성은 이랬다.

3개의 화분에 각기 이름을 지어 주었고 흙이 마를 새라 예쁜 물통에 담긴 물을 내 기분껏 화분에 주는 일이었다. 꽃과 잎에도 수분을 머금으라고 시원하게 물을 잔뜩 부었다. 물을 줄때는 이 얘기, 저 얘기 담소도 나누었는데 나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렛은 얼마 못가 다 죽었다.


이럴수가!


나는 바이올렛 하나하나 이름도 지어주고 하나의 인격체로 그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죽다니.

정성으로도 안되는것이 있다니 적잖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잎에 물이 닿으면 안 되고 냉해에 취약한 대표적 식물이라 흙에 물기가 사라질 때 쯤 냉기가 가신 물을 주는 것이 원칙인데 물이 마를 새라 과한 관심으로 꽃과 잎에 물을 부어댔으니 불쌍한 나의 이름있는 바이올렛 화분3개는 결국 애정 과다인 과습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때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것은 반드시 ‘아는 것’과 ‘이해’를 동반해야 하는구나. 

이후로 나는 식물에 대한 지식이 조금 생겼고 우리 집 환경에 맞는 식물도 잘 고를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 베란다에는 사계절 꽃을 볼 수 있고 추운 겨울에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잘 적응하며 버티는 초록이들이 많아졌다.









여러 이유로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시기에 나는 가드닝을 하면서 마음 수련을 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작은 새싹이 돋아나는 걸 보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희망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작은 씨앗에서 초록 이파리가 돋아 날 수 있는지, 어디서 흙을 밀어 올릴 힘이 나오는 건지 보면서도 신기했다. 여린 새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자라고 꽃까지 피워낼 때는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감동했고 사진을 수백장씩 찍으며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 

유난히 지치는 날, 마음이 퍽퍽한 날 베란다로 나가 깜깜한 그곳에서 화분에다 이 얘기 저 얘기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꽃은 말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내 마음을 위로하지?
아니 어쩌면 꽃은 말이 없기 때문에 위로가 되는건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그저 내말을 들어 주기만 하니까.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고 너무 많은 현자들이 있다. 다들 나에게 가르치고 좋은 것들을 알려주지만 사실 내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것은 지혜로운 말이 아니라 그냥 내말을 들어 주기만 하는 꽃의 침묵이다.


-모든 진리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말라-

 모든진리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말라.
 내가 목말라한다고 바다를 가져오지는 말라.
내가 빛을 찾는다고 하늘을 가져오지는 말라.
다만 하나의 암시, 이슬 몇 방울, 파편 하나를 보여 달라.
 호수에서 나온 새가 물방울 몇 개 묻혀 나르듯 바람이 소금 알갱이 하나 실어 나르듯.
 (올라브 H. 하우게)


사람들만 내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주변사람들을 아낀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다 나의 꽃들이 생각났고 류시화님의 ‘시로 납치하다’라는 책에서 이 시도 보게 되었다. 내가 위로를 느낀 건 그들의 지혜 때문이 아니라 침묵 때문이었고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은 모든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닌 작은 행동이라도 보여주는 것임을.   


아무 약속도 일정도 없이 집안을 정리하고 환기를 시키며 베란다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시간,

시 한편 뒤적거릴 여유가 있는 감사한 오후. 


가끔은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분이 든다.

잠깐의 쉼은 이렇게 내 마음에 식물 하나 심고 바람 통하게 길을 만들어 준 가드닝 같은 느낌이랄까?

바람통하기.

바람길.

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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