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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n 02. 2020

존재의 고마움과 개성을 담은 미역국

미역국 못 먹은자의 소심한 미역국 찬양이야기.

"너희 집으로 전복 보냈다.
수아 생일이라 미역국 끓여서 먹으라고.


이른 아침 어머님의 문자가 도착했다.

두 아이의 생일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미역국에 넣을 재료는 자꾸 깜빡하곤 한다. 아이 생일 선물이나 그날 무슨 음식을 먹을지는 매번 고민하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미역국에 대한 생각을 번번이 놓치는데 감사하게도 어머님이 '전복'을 넣으라고 미리 보내주시니 이번엔 잊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땐 무조건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소고기 미역국 이외의 미역국은 먹어보지 않았기도 했고 소고기를 들기름에 달달 볶고 투명한 초록색이 된 미역을 넣어 또 들들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기만 하면 뽀얀 국물이 되는 마법의 소고기 미역국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간혹 해산물을 넣은 미역국이나 들깨 미역국 같은 변종?미역국을 만나면 소고기 미역국같이 맛있는 음식을 두고 어떻게 미역국에 다른 재료를 넣을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그 변종 미역국의 일인자가 된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내 입맛의 변화가 아니라 아이들의 입맛 때문이다.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텁텁한 소고기보다 전복이나 바지락을 선호하면서, 소고기 미역국을 좋아하던 나는 여유가 될 땐 전복 미역국, 재료가 없을 땐 만만한 바지락으로 미역국을 끓이게 되었다.

전복이나 바지락뿐만 아니라 첫째는 성게 미역국이나 가자미 미역국 같은 내 기준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미역국도 좋아해서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면 늘 여러 가지 미역국을 접하며 미역국의 경지를 넓히게 되었고 급기야 가정 음식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미역국을 미역국 전문점이라는 식당에서 사 먹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미역국'하면 가장 먼저는 생일이 떠오르겠지만 아이를 낳은 입장에서는 산후 음식으로 한달동안 먹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초학기]라는 문헌에 보면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먹은 뒤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라고 적혀 있고 실제로도 미역에는 칼슘과 요오드가 풍부해 산후에 늘어난 자궁의 수축을 돕고 조혈제 역할을 하며 산후 음식으로 빠지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이런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미국의 유명 병원에서도 산후 건강식으로 미역국을 내놓기도 한다니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지식은 지금과 견주어도 전혀 뒤처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그래서 나도 아이를 낳고 미역국을 정말 매일 먹었는데 조리원에 있을 때는 미역국 전문점 못지않게 다양한 미역국을 먹었다. 같은 미역국이라도 매일 새로운 재료가 첨가됐기에 나는 미역국이 전혀 질리지 않았다. 어떻게 같은 미역이라는 메인 재료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맛의 미역국이 나올 수 있는지, 게다가 부재료가 달라질 뿐 국이라는 성격도 변함 없는데 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를 기쁘게 했던 미역국의 향연은 지금 떠올려도 황홀하다.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잃지 않으면서 함께 하는 다른 재료의 특성도 함께 살려주는 한식의 미학을 제대로 맛보았다면 조금 과장이려나?

어떤 재료를 넣어도 미역국이라는 부담 없고 깔끔한 국의 느낌은 유지한 채 지루할세라 베리에이션 되는  아름답고 화려한 피아노 연주처럼 그렇게 미역국의 변신은 단조로운 식단에 즐거움이 되어주었던 기억이다.



미역국의 부재료가 다른 것은 아마도 지역적인 차이 때문일 것이다.

해산물을 구하기 쉬운 곳에서는 해산물을, 그중에서도 어디는 전복을 어디는 가자미를 어디는 황태를 이렇게 말이다. 사실 이런 개별적인 미역국의 스토리도 궁금하지만 굳이 서로 다른 음식의 기원을 찾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역국만 봐도 각양각색인 것을 알 수 있다. 지형과 기후를 고려한 선조들의 저장음식과 대체음식의 발전은 음식기행과 같은 테마여행을 탄생시킬 만큼 다양하고 재미있어 미역국의 다양화 역시 그중 하나의 테마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


미역국의 또 다른 특징은 내가 먹기 위한 음식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위한 음식이라는데 있다. 어쩌면 그런 미역국이 가진 고마운 마음 덕에 나는 그 맛이 질리지 않는지 모른다. 내가 먹고 싶어 끓이는 거라면 소고기를 넣겠지만 그보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님을 위해 끓이기에 내가 미역국에 전복이나 황태를 넣는 것 같은 마음 말이다.



대표적인 가정 음식이기에 미역국은 어떤 반찬과도 잘 어울린다. 강하지 않으면서도 투명하고 야리야리한 국물은 적당하게 감칠맛 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아 뜨끈하게 속을 데워주니 밥을 뜨기 전에 미역국 한 스푼 먼저 먹게 되고 밥을 다 먹고도 국이 남았다면 그릇째 들고 들이키게 되는 음식. 누군가를 위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끓이는 특별한 음식이면서 부자나 서민이나 부담 없이 끓여 먹을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음식이기도 한 미역국.


내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누군가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듯이 반대로 내 생일이 되면 누군가의 의미 있는 마음기대하게 는데 작년 내 생일엔 그 기대가 처참히 무녀 졌었다.

아침에 바빴다면 저녁에라도 일찍 퇴근해 끓여줄까 기다렸는데 내가 기대한 미역국은 그다음 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신랑이 꼴 보기 싫었지만 차마 미역국 안 끓여줘서 화났다는 말은 할 수가 없어 며칠 동안 입을 닫고 지냈다.

 게다가 신랑은 생일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지 굳이 미역국을 먹을 필요는 없다며 미역국을 끓이지 못한 것에 대한 괴상한 변명을 진짜인 듯 늘어놓아 기분 상한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내가 이렇게 미역국에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줄 신랑이 미리 알았다면 이런 치사한 언사로 인한 싸움은 면했을 텐데.


나에게 미역국은 생일을 축하하는 대표 메뉴로 존재의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음식일 뿐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부재료를 넣어주는 센스를 더해 나는 너의 음식취향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어필할 수 있는 정성 가득한 음식, 그 이상의 선물인데 말이다.


시어머님이 전복을 챙겨주시며 아이의 미역국 취향을 알아주듯이 이제 내 미역국 취향은 신랑이 좀 챙겨주었으면 좋겠는 마음을 이 글에 실어 전한다. 내가 좋아하는 거의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챙기지만 미역국만큼은 타인에게 기대고 싶다.

나의 존재와 개성을 인정받는, 타인이 주는 진솔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그런 고마움과 아이의 취향을 담아 나는 내일 전복 미역국을 끓이려고 한다.

엄마는 모든 식재료중 너의 최애인 전복을 미역국에 넣음으로써 있는 힘껏 너의 존재를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거란걸 너가 이글을 볼때쯤 알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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