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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Aug 08. 2020

일기를 쓰자, 그리고 울자

짠내 나는 게 진짜야.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6개월 정도 쓰고 있다. 모닝 페이지란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제안한 매일 3페이지 글쓰기인데 첫 3개월까지는 정신없이 써 내려가기만 하고 들춰 보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맘이 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글은 잘 썼는지 수정하고 싶어서 살짝살짝 다시 보기도 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문법, 맥락 등을 무시하고 쓰다 보니 이제는 예전 글을 읽고 싶지 않아 졌다. 뭐든 익숙해지면 다른 행동양식으로 변화하는 게 새삼스레 어렵다. 그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9주 차 과제로 지금까지 써온 모닝 페이지를 읽고 뜯어보고, 마음잡고, 인정하라고 한다. 


‘내가 쓴 글이니, 내가 느낌 감정을 써 내려갔으니 다 아는 얘기지, 다 아는 감정이지 굳이 뭘 읽어...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감정은 두려움이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지. 그것 때문에 괴로우면서도 나아가는 과정이 멋졌던 그런 내용이지.’


나는 모닝 페이지를 펴지 않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좀 이상하다고 알아차렸다. 다 아는 감정인데 왜 읽어보지 않는 거야? 그렇게 읽고 싶어 했으면서 왜 읽지 않는 거야? 나의 다른 자아가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다시 노트를 꺼내 대충 훑어보았다. 


‘맞아. 역시 내 생각이 맞잖아. 별거 없어’ 하면서 빽빽한 페이지를 바라보는데 어떤 단어가 아니라, 어떤 내용이 아니라 매일의 그 작은 글씨들이 나의 얼굴을 분홍빛으로 만들고 내 몸 어딘가 처박혀 있던 눈물을 끌어올렸다. 


다 아는 내용을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시간과 마음을 내어 썼던 걸까? 무엇을 위해 나는 내가 누려왔던 안정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했던 걸까? 나만의 성장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내 성향을 거스르는 상황이 참 많았다. 그 노력이 애씀이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내 눈에는 자잘한 그 글씨 자체로 온몸으로 와 닿았다. 39살, 안정적인 직업, 두 아이, 휴직.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따라가면 되는 그 시기에 나는 여중생처럼 고민했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고 책에서 하라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왜?

도대체 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잖아?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여태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았잖아. 휴직했으면 그냥 쉬고 애들 잘 돌보기만 하면 되잖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내 안의 안정지향적인 자아도 그렇게 이야기했고.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대상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은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나에게 유일해지고 싶은 감정은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라면 부를 방법이 없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깨알 같은 매일의 기록은 사랑 그 자체였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 나의 작은 결심과 실천들이 대단한 결과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도 없지만 인생에 대한 태도만큼은 조금 더 힘이 생겼다.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행자들의 삶을 온몸으로 지지하고 끄덕이고 토닥토닥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이랄까?

지나온 일기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감정과 노력들이 지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별것 아닌 걸로 마음 쓰고 고민하고 매일같이 적었다는 게 참 못나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나이스하고 우아한 사람을 꿈꿔왔는데 질투하고 미워하며 계획한 일을 미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별일도 아닌 것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짠내만 나고 멋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정말 그랬다. 특별히 반전은 없다. 그럼에도 다시 읽으니 그 짠내 나는 작은 글씨들이 사람을 울리는 것이었다. 별 볼일 없는 노력들로 매일같이 앞으로 나가는 듯 제자리인 듯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멋지지는 않지만 매일 고민한 내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느 시절 나의 이런 시간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별일 아니고 지질한 이 감정들을 느끼며 누군가도 셀프 격려하면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서로가 덜 창피하고 힘이 되고 그러지 않겠냐며.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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