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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Nov 27. 2019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있나요?

내가 이렇게 무용의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애를 하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1년쯤 신혼을 즐기다 또 적당한 시기에 아이를 낳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남들 다 가는 그 인생이 내 인생으로 들어오는 것은 모두가 그래 왔다고 해서 나 역시 응당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연애도, 결혼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아이의 문제는 나의 통제권 밖이어서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적당한 시기’가 됐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다 한방, 양방 모두의 도움을 얻어 드디어 나도 임신부가 되었다. 임테기의 두 줄 기쁨은 잠시, 임신유지도 그냥 되는 일이 아니었음을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소심한 사람으로 몸도 소심했는지 자주 상황에 졸고 스트레스에 취약해 일하면서 줄곧 유산의 위험이 찾아왔다. 매일 병원을 오가다 결국 이른 휴직을 하게 됐고 두  달이 넘게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와병 생활을 했다.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고 무사히 순산을 했지만 출산 이후의 삶은 나도 다른 이와 비슷하게 힘들었고 비슷한 강도로 우울했는데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 둘째를 임신하고 연년생 육아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


첫째는 그렇게 갖기가 힘들었는데 둘째는 무슨 일인지 갑자기 찾아왔고 쌍둥이보다 힘들다는 전투적인 연년생 육아를 전반전 정도 끝낸 후(둘 다 어린이집에 보낸 후) 복직을 했다. 복직하기 전 서론이 너무 길었나?

애만 키우다 복직을 할 시점에는 업무지식에 자신이 없어 사이버 강의도 듣고 나름 노력을 했는데 강의는 강의일 뿐 실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업무는 나에게 완전한 패배감을 안겨줬다.


어디서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할지조차 가늠이 안 돼서 매일 그냥 벌거벗은 채 업무와 맞닥뜨리는 기분이었고 이런 나를 팀원들도 견디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나 스스로 또한 견뎌 내야 했다.

나는 참 성실하고 배움에 열심인 사람인데 이렇게 매일이 어려우니 오히려 의지가 꺾이고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사람인가 자괴감이 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근무지를 옮긴 터라 아는 직원도 하나 없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다 보니 어디에도 비빌 언덕이 없다는 심리적 외로움이 더 컸다.


어느 날 회식자리.

한잔 두 잔 술을 받아먹던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팀장님, 제가 일을 너무 몰라서 죄송해요. 도움이 되어 드려야 하는데 도움은 못되고.. 엉엉.. 흐흑...”

다들 내가 그냥 취해서 그런다 생각하고 다독이고 넘어가 주셨는데 나는 복직하고 두 달 정도 정말 늘 저 생각에 시달렸다. 한 번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무용의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비참했다.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의 나와 나의 감정이 생생하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낸다는 이야기는 지극히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쯤 완성될지 모를 나의 부족함을 견디며 동시에 허공에 떠 있는 다양한 부정적 메시지와 씨름하게 되는데 그 시간 그저 묵묵히 견디는 것을 도와준 것은 독서였다.

책에는 내일은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의 메시지도 있었고 나처럼 부족한 사람들의 허우적거림도 있었다. 때로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라는 공감을 통해 위안을 얻고 때로는 이렇게 나아가면 주인공처럼 멋진 여성이 될 수 있구나 라는 워너비 모델을 만나기도 했다. 시공간의 제약이 많은 워킹맘에게 현실이 아닌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의 도피가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오직 책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직장에서는 업무가 가득한 현실 매뉴얼을 겪으며 노력했고 출퇴근길,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책 속으로 들어가 감정을 챙기는 노력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실수도 했지만 바로잡을 수 있었고 처음이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격려했다. 지나고 보니 당시 팀원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이니 그렇다고.


결국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나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너 정말 한심하다! 집에서 애 보는 걸 그나마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구나? 너는 역시 회사 체질이 아니야... 노력해도 그 자리야. 너에 대한 평가는 다 거품이었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서 속상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가 너무 아파서 그것이 너무 상처가 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한 고비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나오는 법.

회사에서 일로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건 뭘까?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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