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밍블 Nov 28. 2019

휴가는 겹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낀 세대의 소심한 고민

 일하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새로운 업무도, 새로운 환경도 아닌 휴가를 어떻게 쓰는 가였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휴가 좀 낼게요.” 한마디로 담백하게 가능한데 나는 “이러저러해서 이날 하루 휴가 써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다들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앞뒤로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듯 문장이 주렁주렁 딸려오는데 텍스트만 봐도 쩔쩔매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긴 문장을 혼자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고 상대방의 반응까지 예상한 후에야 나는 겨우 내뱉을 수 있었고 비로소 휴가를 쓸 수 있었다.


꼭 누가 눈치를 줘서는 아닌데 왜 그렇게 스스로를 단속하고 상대만 배려했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비행기 티켓 할인을 할 때 미리 싼 티켓을 구입해 가족 여행을 준비했었다. 1년에 한 번 가는 해외여행이고 주말도 끼어 있어서 이 정도는 휴가 낼 수 있지 않겠나 싶어 직원 휴가가 적혀 있는 달력을 넘겨봤는데 해당 월 달력을 보는 순간 머리 위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같은 기간 다른 직원의 휴가가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왜 이런 시련은 나에게만 찾아오는지.


휴가를 낸다는 말도 속으로 몇 번씩 삼키며 겨우 이야기하는데 다른 직원과 겹치는 휴가라니. 지금 생각하면 이미 정해진 여행이고 환불할 수 도 없는 상황에 내가 혼자 끙끙댄다고 달라질 게 없는데 왜 혼자 그리 속앓이를 했는지 모른다. 더군다나 내가 다른 직원의 휴가를 못 가게 발목 잡은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다른 분은 너무 태연하게 둘 다 가면 된다고 신경 쓸게 없다고 하셨다.


‘저는... 엄청... 신경 쓰이는데요..’


당사자들의 휴가를 누가 어쩌겠는가? 윗분들의 내심은 조금 달랐을지 몰라도 어쨌든 그것 역시 업무공백에 대한 걱정이지 나에 대한 평가의 문제가 아닌데 달력을 본 순간부터 나는 몇 달간 좌불안석이었다.


“환불불가 상품이라 싸게 샀거든요. 아휴, 제가 여행을 취소할 수 있으면 좋은데..”


나는 그때 왜 저런 이야기를 매일 주절주절 했던 걸까? 해봤자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면 누군가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더불어 나는 조직을 위해 언제든지 나의 개인적인 생활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 시대 보기 드문 성실한 사람인데 상황이 이럴 뿐,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로 얼핏 해주기도 했지만 내가 원하는 완벽한 평온함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긴 직장은 본래 불편한 곳인데 왜 여기서 완전한 평온함을 찾으려 했는지 나란 사람은 참 번지수를 못 찾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또 반성만 하는 소심한 나였다.

그렇게 외부환경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되는 과정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소심하기도 했고 늘 타인에게 평가받는 과정에 익숙했다. 그런 시스템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평가로 안정감을 얻으며 살아오기도 했다.

일하면서 나의 민낯을 많이 발견했다. 육아를 할 때도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나 바닥을 경험한 적이 많지만 상대적인 약자와의 생활이기에 나를 평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대로 조직은 늘 나를 평가하는 위치였고 평가에 예민한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렇기에 더 성장하기도 했다.

 

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생각보다 직장생활은 꽤 잘 견뎠는데 그 이유는 바로 누구의 탓을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왕 힘든 직장생활이라면 상황을 바꾸려는 발버둥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모습을 관찰해 나의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다.  

무슨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지?

그 상황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지?

나는 왜 그 상황이 힘들지?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바꿀 수 없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비록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마음은 걱정 투성이 일 때가 많았지만 휴가는 예정대로 떠났다. 여전히 쩔쩔매는 캐릭터일지라도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는 주절주절 무슨 말을 하기보다 조용히 흘러가는 대로 가만있어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좌불안석의 원인은 누군가의 비난이나 눈치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했던 내 스스로의 채찍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늘 나에게만 가혹한 사람이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 엄격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아닌데 왜 늘 그렇게 상반되는 기준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관점을 바꿔 원활한 직장생활을 한 것처럼 이제는 나를 돌보며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다른 사람에게 허용한 이해의 공간을 나에게도 내어주며 남들이 보는 좋은 사람을 넘어서 내게도 좋은 사람이 되어주기로 조용히 내게 말해본다.     

이전 01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