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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07. 2020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그대로 상대방에게 하면 된다죠?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_류시화)


p24.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특히나 요즘은 어디서나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하는 법, 부자 되는 법을 아무리 옆에서 정답이라고 말해준다 한들, 그 이야기를 듣고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 "어차피 다 알려줘도 진짜 해보는 사람 별로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하는 묘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듣고도 갸우뚱하며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다른 누가 아닌 나이기도 하다. 대학생 때 한창 류시화 님의 책이 인기였다. 지구별 여행자. 인도 여행. 생각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가방을 싸매 인도로 떠났다. ㅋㅋㅋㅋ 내 주변에도 몇몇 있었으니...ㅋㅋㅋ 나는 그때 인도를 책으로 접했고 당시의 유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류시화 님에게는 인도가 유행이 아니라 경험이자 삶이었다. 아직도 인도를 계속 오가시는 걸 보면. 그리고 인도는 엄청나게 변화했으면서도 그대로인 구석이 많구나 새삼 놀랍기도 했다.



류시화 님의 신간도 아니고 지금 회자되는 책이 아닌데 지금 읽게 된 것은 후배의 고백 때문이다.(자랑이기도 하다.ㅋ)


p101.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행운을 가졌는가?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친한 동생이랑 카톡을 하고 있었는데 후배는 이 내용을 사진 찍어 보내주며 카톡을 마무리했다. 책으로 하는 고백이 너무 따뜻해서 무슨 책인가 찾아보니 류시화 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라는 책이었다. 나는 왠지 이 책을 읽는 것이 그 카톡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그리고 차근차근 읽어 본 책.



도대체 이 많은 에피소드와 좋은 이야기는 어디서 수집하시는 거지? 과연 인도에는 모든 것이 있구나 싶었다. 하긴 우리 신랑도 인도에서 1년 반을 살았는데 몇 가지의 얘기만 들어도 삶의 오르락내리락 폭이 어찌나 큰지 내 좁은 마음 공간에는 담을 수가 없었다.(담고 싶지 않았다는 게 먼저일 수도? 인도 이야기는 내 삶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이렇게 류시화 님의 이야기가 되어 펼쳐지니 하나같이 대단한 깨달음이 되었다. 대단한 깨달음이지만 젠체하지 않은 초연하고도 이해심 많은 자연인의 이야기 같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의 꽤 많은 에피소드를 한글파일에 저장해두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써먹을 날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ㅋㅋㅋㅋㅋ

24페이지 문장을 다시 끌어와야 하는데, 결국 나의 경험이 되지 않으면 그 수많은 에피소드는 한글파일에 조용히 죽어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 남의 깨달음은 한글 파일에 저장해 두고, 내가 자주 하는 실수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아래 문장들만 블로그에 남겨둔다.


211. 티베트에는 앉자마자 설법하는 사람은 스승으로 따르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그 사람을 진실로 이해하지 않으면 가르침은 강요에 지나지 않으며 때로는 상처를 주는 일이다. 내가 옳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꽃이 피어나도록 돕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서 당신의 꽃이 피어나게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235. 내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진짜 케사르’를 수단으로 ‘나’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닐까?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고 주장함으로써 나의 에고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많은 경우에 가짜와 진짜는 본래의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의 관점 안에만 있는 주관적인 판단인데 우리가 그것을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고수하는 것인지도.



살랑살랑 내 마음에 문장이 날아왔다.

당신은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꽃이 피어나도록 돕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서 당신의 꽃이 피어나게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나의 씨앗을 참 많이 뿌렸다. 상대방의 씨앗이 잘 자라도록 바람이 되고 햇빛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나의 씨앗을 뿌리고 다녔는지 모른다. 나의 복제물을 만들기 위해서 참 애썼다.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뭔가 그러지 말야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저 문장은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로웠다.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고 먼저 긍정하고 칭찬해주며 나의 역할을 다시 알려주고 있으니. 류시화 선생님 너무 지혜로우신 거 아니냐며!!!!



가끔은 나의 즐거움이야.라고 말하며 도움을 즐겨한다. 헌데 오늘 다시 생각해본다. 자신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을 내가 가로채지는 않았는지. '적당한 거리'와 '틈'. 늘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들.



망고씨앗을 심고 하루 만에 망고가 열리길 기다리는 원숭이처럼 살지 않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나 자신에게도 왜 열매가 열리지 않냐고 닦달하기를 39년.


2021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 때를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절기마다 다르게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기쁨과 고통 역시 지혜롭게 받아들이며 인내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이제 복직도 다가오는데 영혼은 집에 두고 껍데기만 출근하는 일 없도록 나의 평일도 온전한 인생으로 대접하며 살자는 다짐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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