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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03. 2020

복직할 거야? 아니면 그만둬도 되고...

복직을 앞에 두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나는 지금 2년째 휴직 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 둘, 총 6년의 휴직 중 6년을 모두 다 소진 중인 휴직자다. 임신하고 유산 가능성에 바로 휴직을 했고 연년생 아이를 낳아 내리 4년을 쉬었다. 4년을 쉬고 돌아간 회사는 출산 전보다 환경이 나아졌고 호봉도 올라 이래저래 다닐만했다. 그렇지만 나는 또 휴직을 했고 벌써 2년이 흘렀다. 휴직 중 1년은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여유로운 생활을 했고(솔직히 공부를 가장 많이 했는데 큰 성과는 없어서 매우 우울한 부분이다.) 남은 1년은 다들 겪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아이들과 집콕 육아에 사용되고 있다.


2년이 후딱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도 빠르게 지나갔다. 벌써 12월이지 않은가? 코로나 19가 3월이면, 4월이면, 5월이면, 여름이면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그것은 예상을 깨고 아직도 성행하고 있고 시간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자기 페이스로 가고 있는 것이다.


3개월마다 휴직기간을 달성할 수 있는지 휴직 목적에 맞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복무 점검서가 날아온다. 늘 '육아에 전념 중'이라고 쓰고 나의 출입국기록을 보낸다. 그 서류들은 '놀고 있지 않음.' '여행 다니지 않음.' '오직 집에서 육아에 전념 중'을 증명하는 서류다. 이제 마지막 우편물이 왔다. 휴직기간 달성 여부에 당연하지!라고 쓰고 싶다. 달성! 달성!! 달성!!!! 이 칸에 달성 불가 ㅠㅠ라고 쓰는 사람도 있을까? 쓸 때마다 삐죽거리게 된다. 출입국기록은 나와 아이들 모두의 것을 보내야 한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출입국기록을 굳이 보내야 돼? 너도 나도 알고 있는 이 상황에?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휴직은 너무 큰 달콤함이다. 휴직에 대한 대가가 이 정도의 귀찮음이라면 얼마든지 작성해 보내드릴 수 있다. 모든 멈춤은 아름답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며 나는 2년의 휴직을 누렸다.


휴직이기 때문에 그렇다.


휴休직職


무직이 아니고 실직이 아니고 휴休직이기 때문에.


복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선택할 수 있음을 내포한 단어이기에 휴직은 좀 여유가 있는 단어인지 모른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이 지긋지긋한 월급쟁이 인생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언제나 을의 신세로 사는 것 같아 처량했고 슬펐고 다 큰 어른임에도 눈물 콧물 바람 휘날리고 다녔는데. 휴직 이후엔 모든 게 休 고요했다.


그런데 갑자기 복직을 앞두고 변수가 많아졌다. 요즘 어딜 가나 문제를 일으키는 집 문제도 그렇고, 신랑의 회사 정도 그렇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계산하다가 신랑은 지나가는 말인지 내게 전달하고 싶은 말인지 알 수 없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냥 자기가 그만둬도 괜찮고..."


그만둬도 괜찮고...

그만둬도 괜찮고...

그만둬도 괜찮고...

그만둬도 괜찮고...


이 말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회사 그만둬도 돼!" 바로 그 문장 아닌가? 예전의 나라면 펄쩍펄쩍 뛰며 신랑 마음 바뀔까 날 밝는대로 전화해 퇴사 의사를 밝혔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하면 여유 있고 있어 보이게 퇴사를 할 수 있는지 머리를 좀 굴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지? 신랑의 지나는 이 한마디를 나는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했다.

정말? 이라고도 하지 않았고 아직은 아니지...라는 말도 없이 잠시 모르는 척했다. 신랑이 다시 슬쩍 이야기했을 때 그제야 나는 "그래도 하는 데 까지는 해보고 결정할게." 하고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육아에 내 비중이 크다면 내가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경제적 자유를 얻어 퇴사를 하는 거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겠지만 육아에 전념할 사람으로 퇴사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먼저 육아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안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결정했다면 기꺼이 퇴사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래 저래 이런 상황이면 자기가 그만두는 게 낫지...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속상했다. 그것이 매우 합리적인 동시에 내가 배려받는 상황일지라도 아직 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휴직자의 신분을 너무 오래 갖고 있었다. 달콤한 꿀을 너무 오래 맛보고 있었다.


이번엔 인사팀장님이 나섰다.

1월에 복직할 거냐고.

쿵쾅쿵쾅.

1월이면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는데.

12월이 언제 이렇게 성큼 온 거냐며...

좀 더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다 했다. 내 마음이 복직 준비를 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우선 오늘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나는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만의 자아실현 도구가, 성취욕구와 경제적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나만의 파이프라인이 있었다면 결정에 좀 더 자신 있었을 텐데. 퇴사 후 육아에 전념이든 1월 복직이든 나만의 무엇이 있었다면 뭐가 되든 상관없었을 텐데 갑자기 복직과 퇴사라는 키워드 앞에 두려워졌다.


막연하게 언제 복직이지? 하는 물음에 내년쯤이요? 하던 게 코앞에 다가왔고,

막연하게 언젠가는 퇴사해서 나 하고 싶은 일 하며 살 수 있겠지... 생각하던 상황이 갑자기 선택지로 나타났다.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다.)


좀 더 바짝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퇴사는 우선 잠정 유예.

하지만 이제 퇴사도 선택지로 올려둔다.


퇴사할 각오로 무엇이든 열심히 일궈야 한다. 퇴사를 선택해야 하는 그 순간에 주저 없이 퇴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육아에 전념이 싫으니 뭐니 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내 인생을 당당히 책임지는 사람이 되자고, 그런 멋진 언니 되자고 오늘 밤 개미만 한 목소리로 다짐한다. 다짐도 당차게 하지 못하는 나란 사람...


음... 그래도 기억하고 싶다.

오늘의 마음을.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애매한 마음을.

복직과 퇴사 사이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마음이 되는지 딱 그 마음을 기억해 두기로 한다.

와신상담의 마음? 응? (내가 그 정도로 비장하게 큰 꿈을 꾸는 사람인가 싶지만... 그렇게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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