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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02. 2020

질문 좋아합니다.

선생님들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질문 있나?"


학창 시절 수업을 마치며 선생님들은 항상 이렇게 물으셨다. 나와 동시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아마 이 질문을 한 번도 권유형으로 느껴본 적은 없었을 거다. 저 문장은 질문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수업을 끝마치겠다는 선생님의 의지가 담긴 문장이었다. 그런 내가 선생님의 의지를 거스르고 처음으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조용하고 소심한 학생이었던 나는 평소 질문이라는 걸 품어 본 적이 없는 순응형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질문을 했던 이유는 정말 궁금증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평소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특정 선생님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다. 나도 선생님께 관심 있어요!라는.


결과는 어땠을까?


선생님은 한심하게 되물었다.

"수업시간에 뭐 한 거니?"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른 채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당황한 나를 보며 선생님은 미안하셨는지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정말 모르겠으면 교무실로 와~"

선생님은 다소 억양을 고치시고 친절한 모드로 전환하셔 설명의 의지를 보이셨지만 내가 교무실로 갔는지 가지 않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내 관심의 표현이 한심하게 되돌아왔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이런 환경에서 순응적인 태도를 굳혀간 나는 여전히 질문이 없는 삶을 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어서 질문을 만들었다. 그것이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던 내용인지 몰랐던 것은 수업시간 내내 '오늘은 선생님께 질문을 해서 친해져야지'라는 어제도 했을 생각만 되풀이 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른에게 무슨 말을 하려면 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해야 하는 사람이 나니까. 그런 내가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무릅쓰고 질문을 했으니 선생님과 꽤 친해지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용기를 냈는데 부푼 마음이 갑자기 쪼그라든 사건(나에게는 매우 큰 사건!)을 겪으며 나는 질문이 더욱 어려워졌다. 반대로 질문을 받으면 사랑고백을 받는 사람처럼 수줍어진다.


특히 이런 것.


"언니,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내가 써놓고 머쓱하다. 왠지 변태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기분탓인가?

내가 관심의 표현으로 질문을 선택했기에 아마 더 그럴 것이다. 비록 이후엔 질문이 없는 사람이 됐지만 내 기억엔 여전히 질문=관심이라는 공식이 존재한다.


오늘 멀리 떨어져 있는 후배와 줌으로 이런저런 나눔을 했다. 내가 언니이고, 언니의 역할을 좋아하고 호스트니까 아무래도 늘 묻는 역할일 때가 많았다. 그것이 당연했고 익숙했고. 가끔 장황하게 말을 많이 한 날은 어김없이 후회했기 때문에(꼰대 같아서;;;) 되도록 말을 아끼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후배가 자꾸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언니의 oo은 어떤 이유예요?"

" 다른 의미가 있어요?"


궁금하구나.


경험으로 알게 된 조언이 아니고 내가 궁금하구나.

누군가가 나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나요? 뭘 선택해야 하나요? 방법론이나 선택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의 내일을 좀 더 단단하게 꾸려갈 힘이 되어줬다.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온기가 되어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었다.


이슬아 작가님은 '부지런한 사랑'에서 스물세 살에 글쓰기 교사로 일하며 한 가지 분명하게 실천한 것이 '궁금해하기'라고 하셨다. 그것을 실천하셨기에 아이들에게 꽤 의미 있는 글쓰기 선생님이 되셨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좋은 인터뷰어가 되신 거라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다른 이에게 질문하는 것을 못하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으로는 살고 싶다. 어떤 질문이든 삼켜버리지 않고 정말 마음 다해 대답해주고 싶다.나의 오지랖은 학창시절에 잉태된 것일까?결핍에서 파생된 애정은 때론 너무 과해서 상대방이나 나나 모두 소진되기도 한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는 아야겠다. 나의 마음 반 반으로 나눠서 반은 친절한 말로, 반은  삶으로 대답하자고 나름 기준을 세워본다.


나를 궁금해 해줘서 고마워!

나머지는 삶으로 대답할게!






(이 글을 신랑이 볼까 두렵다. 나는 신랑에겐 답이 없는 편이다. 친절한 말이든, 삶이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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