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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09. 2020

마지막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요즘 세고 있는 마지막인 것들

남편이 해외출장을 간다.

한국은 코로나 확진자수가 급증하는 가운데 비교적 코로나 청정국가로 가는 것이라 다행이지만 어쨌든 몇 개월간 남편은 부재 중일 예정이다.


남편의 부재.


남편의 출장이 처음은 아닌데 '부재'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혼 때는 남편이 늘 바빴다. 그래서 '부재'가 익숙했다. 몇 년 전 남편의 해외 체류? 는 서로 상의 끝에 미리 '각오'했던 부분이라 괜찮았다. 그것과 연관되는 출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부재가 다르게 느껴진 것은 정말 가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남편은 작년부터 '출장 가게 될 것 같아.'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지만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동안의 찾지 못했던 일감을 이제야 찾았다는 듯 남편에게 비교적 긴 출장이 일정에 잡혔다.



이런저런 상황에 대비해 친정과 합가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외로움을 더 많이 느꼈다. 감정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했고 유치한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전에 쓰지 않던 에너지를 쓰느라 고단했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닌데 어린아이처럼 비교했고 괜한 것에 상처 받고 분노했다. 그때마다 내 마음을 바라봐 준 사람은 신랑이었다. 특별히 무슨 말로 가르치거나 위로하지 않았고 그저 등을 토닥토닥해 줄 뿐이었지만 그래서 더 고마웠다. 내내 같은 공간에 있지 않게 주말엔 드라이브를 하러 나갔다. 꼭 나만을 위한 드라이브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내게 공간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그러한 위로를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겨울 옷의 보온성은 함기성에 달려있다고 한다. 실 사이사이 공간에 공기를 함유하고 있는 상태를 함기성이라고 하는데 친정과 합가 생활에 신랑은 내게 함기성을 갖게 해 줬다. (요즘 패션 유튜브를 많이 봐서 비유가 이렇다.ㅋ)

어떤 대상에 찰싹 달라붙어 짜증 나지 않게, 차갑거나 뜨거운 공기가 바로 닿지 않게 적당한 공기를 머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 말이다. 완충지대 같은 것.


그래서 이번만큼은 신랑의 부재가 겨울철 기모 없는 옷을 입게 되는 것처럼 쌀랑하게 느껴진다. 털옷이 없으면 얇은 옷 두세 개 겹쳐 입고 더 무장을 하면 되겠지만 먼저 마음이 전투태세를 갖추게 되니 뒷목이 뻐근하다. 나는 털옷이 없으니...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추워지는 것 같고.


2-3개월 뭐. 주말 몇 번 지나면 금방이지. 성가신 사람 없어서 편하겠네.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자꾸 마지막을 세고 있다.


이런 드라이브도 마지막이네?

이런 커피 심부름도 마지막이네?

발 마사지도 마지막이네?

함께 먹는 아침도 마지막이네?


뭐가 마지막이야. 곧 다시 오는데. 생각을 고쳐 보지만 그래도 이 순간은 마지막이다. 아마 내가 복직을 앞두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복직을 앞두고 내 생활의 모든 것에도 '마지막'을 세는 중이었다.

이렇게 아침에 늦잠 잘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이네?

아이들 등 하원 시키는 것도 마지막이네?

평일 낮에 도서관 다니는 것도 마지막이네? 등등등.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모든 것이 다 근사해진다. 수면잠옷을 입고 앉아 글을 쓰는 이 시간도 복직 후면 매우 그리워할 시간이 될 것이고.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감상의 원인은 '마지막'이라는 단어였다. 남편의 부재로 인한 아쉬움에 '마지막'을 세었고 복직에 대한 두려움에  '마지막'을 세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붙이자마자 그냥 스쳐 지나갔던 모든 일들이 호박마차 변신하듯 특별한 순간이 되어 나를 간지럽혔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아쉽고 슬프지만 몰랐던 감정이나 의미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우리가 연말이 되면 늘 '아듀-'를 외치며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그런 거겠지. 휘리릭 지나간 수많은 날들에 뒤늦게 이름을 붙여주며 기어코 되새기며 정리를 하는 역할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기억하고 싶은 것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표현하고 싶은 것들,  우리에겐 꼭 무언가 기대어야만 입밖으로 나오는 것 천지이다.


그렇다면 쑥스럽고 새삼스러워 말하지 못했던 말들, 굳이 말해야 아나? 하며 표현 못했던 고마운 마음들 2020년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에 기대어 전해보자.


코로나 19가 휩쓴 2020년이지만 너 덕분에 따스함이 남았다고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오고 있으니 서둘러 멘트를 준비하시라.


나도 신랑에게 여차저차 이러쿵저러쿵 고마운 마음 이렇게 전해 본다.


자. 이 글 말이야. 오다 주웠어.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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