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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15. 2020

겨울이 지나면 봄이지.

영화 '윤희에게'


 내가 좋아한 작가들이 참 많이 언급했던 영화가 있다. 바로 '윤희에게'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야기는 '윤희에게'로 귀결되는 때가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 말끝마다 '윤희에게'가 나오는 걸까? 당장 검색했었다. 으음? 애석하게도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싶었다. 역시 사람은 다른 부분도 있구나 하면서 잊고 있었던 영화였는데 뒤늦게 넷플릭스에서 발견했다. 일부러 영화관 찾아가서 볼 만큼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자꾸 이야기한 영화를 집에서 편안히 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김희애 배우님이 나온다. 우울하고 답답하고 삶의 의지가 없이 그냥 살아지는 윤희의 모습을 윤희 그대로 연기하셨다. 그래도 다 큰 딸이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고 싫은 걸까? 인생을 좀 밝게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영화 초반에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도 좋은 사람 같은데 왜 이혼했을까 싶고. 그러다 쥰의 고모가 부치지 못한 쥰의 편지를 부치고 그 편지를 윤희의 딸 새봄이 읽게 되면서 나는 윤희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아니 윤희를 이해했다기보다는 윤희의 답답함을 함께 느끼게 되었다.


쥰의 경우는 윤희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고모는 꽤 따뜻하고 살뜰하게 쥰을 보살펴 준 것으로 보이고 쥰도 수의사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쯤 눈이 그치려나 끝도 없는 눈을 치우는 게 막막한 고모의 한탄 섞인 질문에 매년 겪으면서 뭐하러 그런 말을 하냐고 묻는 쥰을 보며 평생 체념하며 살아온 외로움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한탄은커녕 그리움도 마음껏 표현할 수 없는 메마른 삶에 눈은 눈치 없이 계속 내린다.  그리고 그 눈은 영화가 끝난 후 우리의 마음에도 어느새 소복소복 쌓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아마 누구나 그런 시선쯤은... 하나씩 짊어지고 살아서 그런 걸까? 어쩌지 못하는 사이 쌓여가는 무엇들... 무게가 없던 눈이 어느새 불편을 주는 무게가 되어버리는 경험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에서 '사랑'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경수가 어떤 겉모습을 갖고 살아가는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새봄의 일에 늘 함께 해주고 자신을 떠나 다른 곳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까지도 포용할 줄 아는 경수 덕에 새봄은 새봄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무로만 살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새봄은 어떻게 사랑을 깨우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가 신기했다. 자칫하면 어긋나기 쉬운 대화에서도 새봄은 엄마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엄마의 딸로 사는 것을 택하는데 어지간히 건강한 사람도 쉽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새봄은 엄마의 고장난 카메라를 고쳐 쓰며 아름다운 것만 찍기에 사람은 찍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새봄이 엄마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은 기적과 같다.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꽤 오래 생각해보았다.

경수 덕일까?

외로운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보듬어주는 걸까?

이리저리 생각해봤는데 모르겠다.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이뤄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서로에 대한 마음이 어느 쪽으로든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조금 살만한 사람이 더 힘을 내게 되는 건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 아무 의미 없이 사는 엄마가 한 줄기 붙잡고 있는 빛이 바로 자신이라면 자신이 무엇이든 해보려고 한 게 아닐까?



재밌는 것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인물들이 조금 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새봄은 엄마에게 담배 피우는 것을 들키자 화들짝 놀라며 무서워하고 엄마는 딸의 남자 친구 동행에 눈을 흘기기도 한다.


삶에 의미를 갖고 충실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뻔한 역할을 해내는 것인가 싶다. 이런 것들이 또 하나의 눈송이가 되어 우리 삶에 쌓이더라도 자꾸만 그 길을 가는 것은 왜인가? 왜 우리는 역할에서 이토록 벗어나기 힘든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그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역할로부터 얻는 의미 말이다. 하지만 성실한 역할을 수행하며 발견하는 의미 이전에 존재 그 자체에도 의미는 있다.



윤희와 쥰의 만남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 이후에 윤희는 달라진다.


자신의 삶을 인정해준 딸의 덕분이기도 하고,

네 꿈을 꾼다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밥을 먹이고 보호해주는 엄마의 역할을 통해서도 윤희는 삶을 부여잡고 갈 수 있었지만 윤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끄집어내 인정해주는 새봄의 노력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전과 동일하게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타인을 통해 삶의 반짝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타인의 발견은 그 사람 전체에 대한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신의 발견이기도 하다.

새봄은 엄마의 삶을 끄집어내면서 분명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엄마와 교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꿈꿀때 따스함이 채워졌을 것이고. 이들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꿈을 꾼다.





새봄은 무엇보다 사람을 아름답다 여기는 눈을 갖게 되었고 윤희는 웃음을 찾았다.

새봄에게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 조금씩 아름다워지는 순간, 윤희는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우리의 마음속에 내리는 눈이

언젠가는 그칠 것이고,

새봄이 우리에게도 찾아올 것을 믿게 하는 영화다.

참 지난하고 긴 시간인 것 같아도 늘 그렇듯 다 지나가리라는 희망이 있고, 역할과 존재가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는 긍정의 영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한동안 왜 이 영화 이야기뿐이었는지 보고 나니 알겠다.

역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구나 하는 마음에 또 한 번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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