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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21. 2020

일 좀 못하면 어때요?

나를 잘 아는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직전에 함께 일한 팀장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았다. 그동안 만나왔던 팀장들과는 다르게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셨고 권위적인 면도 전혀 없으셨다. 팀장님은 내가 묻는 말에 '그럼 그럼, 얼마든지 해도 되지.' 웃음 지으며 매사 긍정하는 분이셨다. 그런데 동시에 팀장님을 생각할 때 조금 뒷맛이 쓴 부분이 있다. 100개의 기억중 98개는 즐겁고 좋은 것인데 결정적인 한 두 개가 내 발목을 콱 붙잡는 부분이 있어서다. 이런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지, 원수라 생각해야 하는지.


지나온 일이니까 답은 알고 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일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말이다. 하지만 팀장님이 나쁜 사람이어서는 아니다. 팀장님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아셨고 자신의 그릇 또한 아셨다. 자신이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 내게 주실 것들을 주셨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은 분명하게 자신의 몫으로 가져가셨다. 자잘한 나눔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던 나는 내 커리어에 중요한 것들을 챙기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이건 분명히 내 잘못이다. 내 것을 챙기지 못한 건 내 잘못이지 누가 내 밥그릇의 밥양을 확인해 주겠는가?





나는 날카롭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은 그랬다. 사실 난 차가운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그렇게 보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차가운 목소리의 내 의견을 언제나 인정해 주었고 쉽게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 당차고 똑 부러지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말이 고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것만으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실상은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하면서 드러났다. 그때 나는 학교 탓을 했다. 성별 탓을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같은 학교 친구들이 외국계 기업, 대기업에 차례차례 합격했다. 무엇 탓을 할 수 없었다. 나는 한없이 작아져 갔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부모님은 매우 실망하셨고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내 동생도 어쩐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모든 말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결국 취업도 못했네...'라는 말로 들렸다. 나의 똑 부러진 이미지는 이때부터 희미해져 갔다. 나는 맹숭맹숭한 나로 돌아왔다. 어영부영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그럭저럭 떠밀려 왔는데 취업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주춤하면서 맥 빠진 나를 발견했다. 나는 나이지만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다. 야무진 과거의 내가 볼 때는 어느 것 하나 성에 차는 것이 없었고 현재의 나는 어떤 것에도 자신이 없었다.




여기저기 부유하던 나는 꾸준히 성실하게 공부해 공무원이 되었다. 콧대 높은 과거의 나와 애매한 현실의 나, 타협점이 그곳이었다.

역시 성실한 것은 미덕이다. 공무원 조직에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어디에 붙여놔도 잘 어울리고 모난 구석이 없었으니까. 나는 둥근 사람이 되었다. 특별한 별이나 마름모꼴인 줄 알고 살았는데 사실 동그라미였구나, 그렇게 적응했다. 그러다 모자란 밥그릇을 보고서야 자각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잖아!!



나는 내가 이러나저러나 괜찮은 사람이니까 넉넉하게 인심을 쓸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내 것이 조금 부족해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실은 내가 남들보다 많이 애쓴 부분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고 상대방이 언제 그것을 알아줄지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생색은 내지 못하면서 고맙단 인사를 받지 못하면 꽁해지는 사람이었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하는 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 해내고 여유 있어 보이는 척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척'하는 사람이었기에 버틸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정해준 모습으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엔 차갑고 야무진 아이로, 사회에서는 여유 있고 원만한 사람으로 나의 크기와 모양을 변경했다.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알아간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내 모습을 모르는데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타인을 나의 거울 삼는 실수를 범한다. 네가 나인 듯 내가 너인 듯.


2년의 휴직기간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을 찬찬히 생각해봤다. 배우고 싶은 부분은 배우고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부분도 체크했다. 누굴 따라 한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구분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내 그릇의 크기와 모양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고 생각보다 차갑지 않고 생각보다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생각보다는' 매우 주관적인 기준이어서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할 때만은

모든 것에 능력이 출중한 것처럼 떠맡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려 한다.


한마디 기분 좋은 칭찬으로 족한 일에는 가볍게 생색도 내보고 생색이란 거 절대 못 내겠다 싶은 일에는 능력 없는 모습도 불사하자는 것.


 일은 좀 못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되는것,

집에 오면 회사를 잊는 것이 이번 복직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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