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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May 17. 2021

5월의 기억, 보통날을 꼭 붙잡겠다는 의지

직장인의 점심시간

복직은 3월이었다. 3월 한 달은 '적응'이라는 단어를 붙일 새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정신없이 보냈다. 4월, 서서히 일이 눈에 익기 시작했고 5월부터는 업무에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때마침 5월이라 날씨와 하늘과 초록 나무들이 직장인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일 년에 얼마 없는 날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시간 날 때마다 가까운 공원을 가고 늦은 퇴근길 밤하늘 사진도 남겼다.


업무에 대한 긴장이 컸던 나는 점심을 같이 먹던 선배에게 점심시간마다 질문을 쏟아부었다. 점심시간은 직장인의 꽃인데... 일 얘기하기 싫어할 텐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의지할 사람이 언니뿐이었다. 이런 나에게 지쳤는지 아니면 이런 내가 가여웠는지 선배는 어느 날 외식을 제안했다.


"oo야, 우리 오늘 나가서 도시락 먹자.!"

"네? 전 도시락 안 싸왔는데요?"

"내가 네 것까지 싸왔어. 얼른 나가자!"


 도시락은 공원 한 켠 한적한 정자에 차려졌다. 아보카도 김밥과 한 사람 몫의 정갈한 과일이 보자기 안에 도시락안에, 정답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보카도 김밥은 정말 아보카도만 들어간 심심한 김초밥이었다. 만약 선배 아닌 다른 사람이 싸주었다면 도대체 이 김밥의 정체는 뭐냐며 면박을 줬을 것 같다. 하지만 선배의 도시락이라서, 잔뜩 얼어붙은 나를 위해 늘 마음 써주던 언니의 마음이 가득 담긴 김밥이라서 오물오물 씹으니 행복이 느껴졌. 매년 5월이 되면 그날의 점심이 떠오른다. 아보카도의 연둣빛 속살처럼 부드럽고 눈부신, 적당히 숙성되어 부담 없는 그날의 점심 말이다.(코로나 이전의 기억이다)


2021년, 또 다른 곳에서 5월을 맞이했다. 담장을 넘어 존재감을 과시하는 장미를 보며 '여름이 오겠네' 소매를 걷어 부치며 말했다.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한 산책길,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어 거기 서봐 거기. 그래 거기 장미 옆에!"

"이게 다 추억이 되는 거야. 회사 근처가 이랬지. 우린 점심시간 산책을 했지. 이런 기억들 말이야."

"음 그러게요~ 지나면 산책하던 기억이 가장 기분 좋게 남더라고요."


'그런가' 사실 속으론 심드렁해하면서도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사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내 눈에 조금 촌스럽게 얼큰이로 핀 빨간 장미 옆에 서보라고 하신다. 아. 이런 시뻘건 얼큰이 장미랑 사진 찍기 싫은데... 하는 마음으로 어정쩡하게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어색하게 찍은 사진을 전송받았는데 너무 환하게 웃고 있다. 어색해하는 사진도 여러 장인데 그 와중에 5월의 계절감은 생생했다.



5월의 날씨가 온화해서인지 점심시간이 직장인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해주는 건지 팍팍한 직장생활 속에서 보드랍게 눈부신 기억은 모두 5월의 점심시간이다. 그런 5월이 지나고 있다. 올해의 5월은 사진뿐만 아니라 글도 남겨야지 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아보카도 김밥 도시락을 싸준 선배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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