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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an 11. 2021

독서모임에 진심인 편입니다.

직접 해 보면 알게 되는 것들.


마티네 독서모임.


2019년 11월 독서모임 하나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독서모임 그게 뭐 대수라고. 예전의 나는 독서모임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 게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19년의 나는 몇 달간 스케치를 하고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독서모임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얼마나 그럴싸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다. 이런 못난 의도를 사실 스스로도 얼핏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대부분의(?) 동기가 선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의도가 선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순간부터 모든 것에 힘이 들어갔고 조금만 어긋나도 긴장이 됐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예민해졌다. 처음부터 장기로 끌고 갈 생각은 없었고 나를 테스트해보는 의미로 시작했던 모임이긴 했지만 단 2회 만에 모임을 접었다. 나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시도가 나와 맞지 않음을 실제로 알게 되었다. 너무 당연하게도 이전부터 나는 그런 사람(앞장서서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 것인데 사람들은 너는 왜 안 하냐, 잘할 것 같은데 해봐라, 응원한다 말했고 어쩐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능해 보일까 봐 움직였던 게 문제다.


아니. 남들은 내가 독서모임과 잘 어울린다고 추천했을 뿐이지 내가 대장이 되어 으스대는 모임을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앞장서고 싶은 내 마음이 먼저 뛰쳐나간 게 문제다. 어찌 됐든 나는 대장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빛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선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시간뿐만 아니라 견디고 감수해야 하는 상황과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에 상당한 보상이 따라와야 기쁘게 지속할 수 있다는 것 등.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알게 된 것은 남들이 나에게서 어떤 능력을 보든 보지 못하든 관계없이 그 일로 인한 기쁨이 내안에 없다면 백날의 노력이 허무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사회가 학생들의 값비싼 놀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인생을 '놀듯이 보내거나' 또는 인생을 '공부만 하지'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보라는 것이다.
(중략)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자기의 빵이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으며, 기계학은 배우되 빵은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은 발견해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또한 자기가 지금 어떤 악당의 위성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월든 p83/은행나무]


'공부만 하지'말고 글로만, 생각으로만 인생을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보라는 소로우의 조언은 늘 나불나불 대던 나의 시끄러운 머릿속을 한 방에 정리해주었다. 이 책을 보고 19년 마티네 독서모임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월든'은 2021년 동일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작년 연말 다시 독서모임을 모집했다. 지인들과 하는 독서모임도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를 모집하고 첫인사를 나누는 어색함이 동반되는 모임은 내게 여전히 힘든 점이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모임을 만드는 것은 타인의 삶이 궁금하고 함께 나누는 공간이 그립기 때문이다. 19년과 다른 나는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멤버를 모집했고 소소하게 잘 꾸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러 모임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모델이 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아이들이 나에 대해 말할 때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지, 없는 용기 쥐어짜 시도하고 노력했던 모든 삶을 편안하게 주어진 상황으로 쉽게 한줄 요약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말이다.


"봐. 엄마처럼 뭐든 도전하면서 너희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봐야지?"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내 노력은 전혀 보지 못한 채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의 프레임을 씌워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바람이 빠졌다. 내가 우리 친정엄마를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체력이 약해서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나는 그저 독서모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으스대는 대상이 불특정 다수에서 아이들로 옮겨진 것에 불과한 시도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내 노력을 알아주지 못할 땐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하는 구구절절한 한탄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봄으로써 월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깨달음은 꼰대력에 보탬이 되는 방향에 기여했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하면서 내 눈의 티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또 다시 누군가를 의식한 삶을 살고 있었고 내가 지금 어떤 목적으로 모임을 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의기양양 거렸다.헙.



결국 내가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이 겪어야 할 삶을 내가 대신 살 수 없다는 것과 내 경험과 노력은 내 삶에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구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독서모임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  내 삶 역시 이렇게 매일 깨닫고 수정하고 고쳐나갈 뿐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보면 역시 각자의 삶을 각자가 살아내라는 것 밖에 조언할 수 있는  없다. 내 삶에 기쁨이 있으면 그걸로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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