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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May 03. 2021

바다가 보고 싶은 감정

“바다보러 갈까?”

“바다? 바다는 왜? 난 바다는 별론데.”     

연애 시절 신랑은 가끔 바다를 보러 가겠냐고 물었다. 그때 난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을 몰랐다. 바다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끝없이 이어지는 파도의 넘실거림이 어지러웠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그저 아까웠다. 우리가 나눌 이야기가 많은데 굳이 멀리 떠나 우두커니 앉아만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는, 답답함 없이 내 인생을 살았던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랬던 내게,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할 때,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는 때, 꾹꾹 눌러 참아야 하는 것들이 해야 할 말보다 많아졌을 때 바다가 자주 생각났다.

성난 듯 들썽이지만 자신의 길을 아는 파도의 정체성이 나의 연약한 성실함과 달라서 보고 싶었고 경계 없는 듯 하지만 다툼 없이 유연한 모습이 부러워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난 기운이 없으면 이상한데. 꿈꿨던 상을 받았고, 모두에게 축하도 받았고, 만족스럽고, 앞으로 분명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게 말하자 생각지도 못하게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왔다. 스스로가 울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황급히 왼쪽 손등으로 닦았다. ”이상한 거 아니야. 기쁜 일에도 마음은 깜짝 놀라니까. 그래서 커다란 기쁨이 있고 나서는 그만큼 심하게 지치는 거야.“ 지쳤다는 생각은 못했다. 하지만 아아, 그렇구나. 지쳐있었던 거구나 생각했다.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속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바다가 떠올랐다. 스스로 울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때, 큰 기쁨만큼 지친 마음이 나를 덮쳐올 때 바다를 바라보면 위로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아, 그렇구나. 나도 지쳐있구나. 생각했다.     


좋은일이 자꾸 생기면 슬퍼할 틈이 없다. 주변사람들에게 지친 기색을 드러내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도 넌 좋겠다. 일도 있고 아이 봐 주실 부모님도 있고.” 돌아올 말을 알고 있으니까. 나의 투정이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여겨질 수 있으니까.


그럴땐 이렇게 말한다.

"바다가 보고 싶다. "


자신의 모습을 아무렇게나 드러내도 ‘바다’인 파도의 모습을 보며 위로받고 싶다.


일이 잘 되길 바라며 잔뜩 긴장하고 움츠러든 마음을 꺼내 쫙 펴주고 싶다. 감사한 마음이 누군가에게 자랑으로 여겨질까 서둘러 숨겨버린 그 마음을 다시 소중하게 맞이하고 싶다. 이렇게나 쪼그라들었었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고 싶다.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실컷 감사해하고 마음껏 기뻐하고 잘난 척도 해보고 싶다. 바다 앞에서라면 가능할 것 같다. 바다라면 나 정도의 마음은 넉넉히 품고 자신의 길을 가는데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     

비오는 오늘,

바다는 아니지만 빗줄기에 내 마음을 살짝 흘려보낸다.


많이 긴장했었는데 어때? 이 정도면 잘 안착한거지? 섣불리 기대하면 어림없다고 그런 건 꿈도 꾸지 말라고 할까봐 말 못 했는데 어쩐지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이제 그만 긴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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