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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l 10. 2019

나의 리틀 포레스트

찌개도 못끓이던 여자

“니도 이제 살림 좀 해야제? 오늘 내 따라 온나.”


그 이름도 파릇파릇한 새댁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날도 교회에서 친구 부모님과 마주쳤다.

친구의 어머니는 매번 내게 무얼 해 먹고 사는지 물어보셨는데, 그날은 어머니의 단골가게를 소개해주시겠다며 나를 굴다리 시장으로 데려가셨다.


굴다리 시장.

우리 동네에는 재래시장보다 더 재래스러운 상설시장이 있다. 굴다리를 두고 길게 자리를 잡아서 굴다리 시장이다.

이 도시에서 학교만 다녔지 거주한 적이 없었던 나는 굴다리 시장 맨 위쪽에 가면 할머니표 로컬푸드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하긴, 형태네 떡볶이 위로는 올라가 본 적이 없었느니 알리가 없지.

새댁의 눈에 굴다리 시장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애호박, 꽈리고추, 청양고추, 오이, 상추, 깻잎, 머윗대, 두릅, 호박잎 등등 하여간 땅에서 나는 제철 채소와 과일들이 정말 많았고 저렴했다.

그때부터였다. 장을 볼 때면 만원 한 장과 장바구니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 나와 꼭 굴다리 시장 맨 위에 있는 할머니 노점에 갔다.

“제가 요리를 못해서요.”

“신혼부부라 식구가 없어요.”라는 핑계로 조금씩 조금씩 내게 필요한 만큼 다양하게 살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고, 그렇게 만원 한 장 달랑 들고나가 한 바구니 가득 반찬거리를 사고도 컵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집에 에어프라이어라는 신문물이 들어왔다.

정말 많은 것들을 튀겨 먹었는데, 어제의 메뉴는 꿔바로우였다.

꿔바로우만 하기엔 양이 좀 부족할 것 같아 급하게 감자채 전도 붙였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기름진 음식에 탈이 난 것이다.

순하고 담백한 음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순하고 담백한- 그다음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필요해!’

순간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리틀 포레스트>

주변 비건 친구들이 극찬했던 영화니까, 분명 따라 해 봄직한 요리들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영화를 찾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자박한 된장찌개에 호박잎 쌈 생각이 났다. 된장에 버무린 아삭이 고추와 꽈리고추 조림과 애호박 국도.

그러고 보니 전부 요알못 새댁이 그 시절 즐겨 만들어냈던 그 시절 음식들이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유자네집


칠렐레 팔렐레 새댁이 드나들던 로컬 할머니의 노점은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도시 인근의 그린벨트가 해제되고 개발될 예정이라, 토지보상 이후 그 많던 굴다리 할머니들은 더 이상 시장에 나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두 분 계시던가.


아이의 하원길.

오늘도 아이의 손을 잡고 굴다리 시장을 걸어 내려왔다.

호박잎은 찾을 수 없어 아쉬운 대로 이것저것 사다가 된장국과 아삭이 고추 무침을 만들었다. 역시 탈난 속 다스리는데엔 된장이 최고다.

하지만 배부르게 먹었으면서도 왠지 속이 허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배가 고파서 고향집에 내려왔다고 했는데, 그래서 인 것 같다.

나는 그때보다 요리를 잘하고 식재료는 굴다리 시장 할머니 노점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추억과 감성의 작은 공간이 사라져서, 그래서 그 추억이 필요한 날, 딱 그 만큼의 허기가 생기나보다.


혜원은 좋겠다.

영혼이 배고픈날 찾아갈 곳이 있어서.

유모차 한 가득 장을 보고 내려오던 길. 3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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