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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l 17. 2019

탈모의 추억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바람결에 머리가 움직이는 게 느껴져서 적어보는 탈모의 추억.


아드리아마이신(AC. 일명 빨간약)을 시작하고 2주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탈모가 찾아왔다.

극심한 두통과 함께.
암도 내 몸에 사는 생명체라고, 내 마지막 머리카락 그 한 올이 자연히 떠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는 개뿔.
잇몸 뿌리까지 시큰거리는 두통에 나는 당장 쉐이빙을 하고 가발과 두건을 구입했다.

머리털이 사라지면서 두통도 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싹싹 밀어버린 내 머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가발업체에서는 혹여 두피에 상처가 날까 봐 약간 띄워서 쉐이빙을 해줬다. 그래서 마치 군입대 앞둔 젊은이의 머리 같아 보였는데 이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겨울에 항암을 해서 추위를 많이 탄 이유도 있었고, 소재 좋은 두건을 내내 쓰고 살면 자연스레 빠지는 머리카락들 관리가 편하다는 후기를 따라 겨울 내내 비니를 쓰고 살았다. 정말 꿀팁이었다.

빠진 모근과 머리카락들이 옷 속에서 콕콕 찌를 일도 없었고, 돌돌이로 온 집 바닥을 밀고 다닐 수도고 피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두건을 쓰고 항암산을 넘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내 머리는 반들반들한 해파리 머리가 되어있었다.

전신 항암 4차를 마치고 집에서는 두건을 쓰지 않은 채 반들반들한 머리로 살았다.

그즈음부터는 난소 보호 주사인 루프린의 영향으로 폐경기 증상을 겪고 있던 터라, 그냥 가만히 있어도 못 견디게 더웠거든.

딱 하나, 아이가 엄마의 꼴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아이는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엄마를 좋아했고, 놀리며 즐거워했다.

전신항암을 마친지 3개월 후. 친구가 임보중이었던 비글과 산책.

전신 항암을 마치고  3개월 정도 되니 머리가 제법 까맣게 올라왔다. 마침 봄이기도 해서 탈가발을 감행했다.

사실, 가발은 아이 생일과 연말 나들이 그리고 아빠 상 치를 때 말고는 쓰지도 않았지만, 다들 맨머리로 나가는 것을 ‘탈가발’이라 하니까.
정말이지 제법 까맣게 자라서, 볼드한 귀걸이와 레이밴 선글라스를 쓰고 신나게도 돌아다녔다.
나중에야 그때 찍힌 사진을 보니, 태양을 가리기엔 부족했는지 강한 햇볕 아래에서는 여전히 머리가 반짝이던데, 뭐 어쩌겠나 이미 지나간 시간인걸.

(아 이 뻔뻔함)


전신항암 마친지 5개월 경과.

햇빛과 공기에 고르게 노출이 되어서인지 머리는 제법 빠른 속도로 까맣게 자라고 있다.

바람에 머리가 날리던 오늘.
어린이집 아는 엄마와 동네 단골 카페에 커피 마시러 갔다가 꽃 손질을 했다.
카페 사장님이 오늘내일 바자회를 하시는데, 손님이 너무 밀려들어 판매할 꽃다발을 만들 틈이 나지 않으셨나 보다.
찍힌 사진을 보니, 제법 가르마도 타진 듯 싶다.


왁스를 사다 발라볼까...


오늘은 표적 항암 허셉틴 7차가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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