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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15. 2019

그래서 소비가 미덕인가

오늘의 수다

나 어릴 적 들은 독일은 참 멋지고 좋은 나라였다.

질서 정연하고 사람들이 규칙도 잘 지키고 정직하고 정부의 말도 잘 듣고 근검절약하는 나라.

만드는 물건은 정말 튼튼하고 좋아서 엄마들의 로망인 나라.
독일은 실제로 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신뢰가 엄청나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선 참으로 파격적인 복지 지원과 신속 정확한 위기시 정부의 대처가 있고 사람들은 바보라고 놀림받을 정도로 우직하게 믿고 따른다지. 이는 온갖 어려움을 정부 주도하에 극복하며 생긴 신뢰라고 했다.

경험적 학습을 통해 생긴 국가에 대한 신뢰


새마을운동을 겪은 우리 아버지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등 따습고 돈 아쉬운 거 모르고 자란 우리 세대에게 그렇게 정부가 신뢰할만하다 학습할 기회가 있었나 반문이 들었다.
여전히 독일 제품은 주부들의 로망이다. (물론 이제는 예쁜 프랑스 제품도 추가되긴 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독일 같은 질서 정연함을, 아니 한국식의 획일적인 질서 정연함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창의적이 되라고도 하고 정부가 무조건 옳으니 믿고 따르라고도 한다. 하지만 창의력을 기르거나 신뢰를 쌓을 기회는 없었다.


우리도 신뢰라는 거 안다. 신뢰라는 건 어느 한쪽이 강요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도 안다. 해방 이후 이 나라는 국민에게 신뢰를 준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건 근현대사만 공부했어도 안다. 결국 우리의 근현대사는 국민에게 불신을 학습시킨 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도 창의력이라는 거 안다. 그건 모난돌이 정 맞는 사회에는 자라나기가 좀 어렵다.
그 어떠한 조건도 충족되지 않은 채 "너희는 돈걱정 없이 풍족하게 자란 세대니까"라는 이상한 이유를 덧붙여가며 극한 상황 속 불가능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은, 이건 폭력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그 일이, 당사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그 소식을 듣는 우리에게까지 충격과 상처로 와 닿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는 국가의 시스템이 국가 비슷하게라도 작동할 거라 믿었고, 여전히 역사가 반복됐다는 확인에서 오는 충격을 받았다. 불신을 학습당했는데 신뢰하라고 압력을 당하고 있다.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구조를 믿으며 천진하게 기다린 아이들은 주검으로도 채 못 돌아오고 있고, 청와대 게시판에 당신이 대통령이면 안 되는 이유를 쓴 이의 안부를 모두가 걱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게 모순이지 않나. 대체 국가와 사회는 무슨 권리로 우리에게 이런 폭력을 가하는 것인가.


껍데기는 강요와 통제로 얻은 질서와 신뢰요, 알맹이는 모순과 폭력인가.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며 출산을 장려하는 나라에서 아이들이 수장당하거나 깔려 죽었다.

우리를 지켜준다며 세금 꼬박꼬박 떼어가고선 치안은 불안하다.

북한 때문에 안보가 시급하니 믿고 호응해달라 해서 늘 따라주는데 그 노무 안보는 맨날 불안하고, 나 답게 사는 삶이 중요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라 하면서 남들만큼 소비 못하면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하긴.
사람 목숨도 돈으로 환산하는 나라에서 소비는 미덕이겠지.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전통의 휘슬러와 쌍둥이칼에 열광하고 묵직하고도 예쁜 르크루제을 좋아하며 안전하다는 볼보와 벤츠를 못 타서 환장이고 전통의 동맹에 목메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엔 없으니까.
그리고 그게 미덕이니까.


2014년 5월 2일에 작성한 글.

개인 블로그 서랍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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