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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16. 2019

우리시대의 상식론

오늘의 수다



“역사적 치매현상”에 대한 고찰 – 우리시대의 상식론을 읽고




<과거에 눈 감는 민족은 현재에 대해서도 눈멀게 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과거의 과오 조차도 순식간에 망각해버리는, 역사적 기억 상실증 환자로 전락하고 만다.>


박호성 교수의 책 “우리시대의 상식론”을 읽으며 유독 우리의 의사소통 문화에 관한 글에 마음이 닿았고 생각이 많았다. 어쩌면 지난 2여 년간 내 스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내 소식일랑 궁금해 하지 마라”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뿐만은 아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의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마치 역사도 철학도 없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 같고, 뼛속까지 줄무늬 스트라이프가 아니라 뼛속까지 식민사관이 박혀 있는 것 같아 이루 말 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서 말하는 “역사적 치매현상”이라는 표현을 자꾸 곱씹어보게 되었고, 어쩌면 “치매현상을 넘어 치매가 사실이 된 현상”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몇 해 전, 어느 교양 프로그램에서 정옥자 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자국의 역사를 바로 아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내가 배운 역사가 그 역사가 아니구나’라는 충격에 한동안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더듬어 보자.


조선왕조는 전기에는 사화, 후기에는 당쟁으로 망한 왕조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주전공으로 한 사림이 관료가 되어 정치한 사대부의 사회이고 성리학적 도덕 철학을 사회 가치규범으로 삼았으며 이들 학자 관료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정치현장에 실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전기에는 귀족화 하는 훈구대신들을 비판하는 새로운 정치세력 사림이 등장하였고, 신ㆍ구세력 간의 갈등이 사화로 인해 숙청을 거듭하며 계속 성장 하였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이후, 17세기 남인과 서인의 갈등 이른바 붕당정치는 학문적 차이에서 기인한 정책의 차이로 인한 정쟁이지 지파의 이들을 위한 무정견한 이해싸움이 아니었다. 붕당이 이해집단으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하고 피 비린내 나는 살육까지 감행하게 된 것은 1세기가 지난 17세기 말 이후의 현상이다. 그래 봐야 결론은 싸움 아니냐 반문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다시 생각 해 보자. 양쪽이 치열하게 정쟁을 했다는 것은 국왕의 독재가 불가능 했다는 반증 아닐까?


이런 말기적 현상에 소급하여 해석하고 알게 모르게 신뢰한 역사적 지식들이 어디 당쟁론과 붕당정치에 관한 지식뿐일까?


1868년 명치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모든 제도 문물을 서양화하는 과정에서 독일 랑케(Ranke)사학의 고증주의를 도입하여 역사서술 방식도 서양화 하였는데, 이때 근대사학을 설립하여 지역학 연구를 시작하며 조선과 만주를 한 영역으로 묶어 ‘만선사(滿鲜史)’를 설정하였다. 막대한 국가적 지원을 받은 관변 어용의 식민주의 일본 역사학자들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힘의 논리’에 의해 우리의 전 역사를 평가절하 하였다.

 식민주의사학의 이론들은 크게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으로 분류되는데, 전자는 다시 지리적 결정론, 사대주의론, 당쟁론, 문화적 독창성론으로 세분된다. 우리나라가 대륙 한쪽에 붙어 있는 반도로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홀로서지 못하고 어디엔가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지리적 결정론이며,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한 사대로 일관한 종속국이지 자주국가가 아니었다는 사대주의론이다. 앞에서 언급한 당쟁론, 즉 순수한 고유 문화 없이 중국의 문화만을 받아 들여 그 아류로 전락 했다는 주장이 문화적 독창성론이고, 왕조는 교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발전되지 못했다는 주장은 정체성론이라 한다. 위와 같은 만선사의 산물은 이를 테면 우리 역사를 외세와의 관계로만 해석하여 약육강식ㆍ부국강병의 논리로써 굴종과 수난으로 점철된 약소국가라는데 초점을 맞추어 서술 한 것으로 매우 낯익은 주장이기도 하다. 익숙하지만 들으면 기분 나쁜,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딱히 반박하기도 어려운 그런 우리의 역사관 말이다.


질곡 진 우리 역사도 진보는 하고 있다. 근대 사학의 주조는 민족국가였고 그 다음에는 제도사였으며 그에 이은 것이 사회사였다. 이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의 근대적 역사학의 개발은 20세기 중반에서야 이루어졌고 그나마 일제 통치하의 실증주의적 관학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로 식민사관이 주도했고 이 실증주의와 식민사관에 대한 반성이 전개되면서 60년대 중반에야 한국학 중심의 한민족사관 구성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신 치하의 특수성과 북한의 주체사관에 시달려야 했고 80년대 후반에는 그 반작용으로 이념주의적ㆍ진보주의적 사관에 휘둘리게 되었다. 90년대 이후, 정치와 사상 전반에 걸친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의 역사’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 ‘인간의 역사’들은 대체로 외국의 것으로 번역된 것이었다.


  “시간을 지키지 않는 한국인. 매사에 서두르는 한국인. 일에 계획성 없는 한국인. 어디서나 화투 판을 벌이는 한국인.” 이러한 우리의 좋지 못한 모습을 꼬집으며 외국의 바람직한 예와 비교 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뒤집어 생각 해 보자. 수원 화성을 만들고 기록을 남긴 이는 누구이며, 언제 어디서든 화투 판을 벌이는 현상은 화투가 보급되고 난 이후가 아니었을까?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韓國痛史)> 서언에서 「국가는 소멸해도 역사는 소멸할 수 없다. 국가는 형태요, 역사는 정신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태는 허물어졌지만 정신은 독존할 수 없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통사를 쓰게 되었다. 정신만 보존하고 소멸되지 않도록 지키면 형태는 어느 때든 부활할 것이다.」라고 확언 하였다.

형태가 살아난 지금, 후대 학자들은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의 눈으로 세계사를 바라보고 국제 정치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에게 마키아벨리는 “장기간 지배를 받아왔고, 그 아래서 사는 데 익숙해진 인민은, 우연히 굴러 들어온 자유를 손에 넣어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라며 비수를 꽂는다.


비에 젖어 땅바닥에 떨어진 무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아침에 피고 해질녘 지는 아름답고 청초하며 수수하고 강한, 나라꽃 무궁화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은근 그리고 끈기를 뜻으로 품고 있으며 끝도 없이 아름답다는 이름을 가졌다. 너무나 아름답고 고고하다. 애국가 영상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있어 무궁화는 아름다움의 차원이 다른 꽃이었고, 아버지의 애국을 이어 나 또한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의 상징이었다.

어느날 아침, 비에 젖어 차 보닛에 덕지덕지 붙은 무궁화를 보았던 날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았다.

물에 젖은 휴지마냥 질척거렸다.

역겨웠다.

그 역겨움으로 인한 충격은 애국심 이라는 것도 무궁화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닿았다.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한 순간의 차이인 것 처럼 애국심 또한 그러하다. 민족주의와 애국심은 사람의 심장을 불타듯 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애국심이란 아름다운 것이며, 그렇기에 국가는 마땅히 호국영령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 일테다. 하지만 애국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지는 않다. 오히려 추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오히려 자신들의 애국이 빛나고 아름다우며 비장미까지 겸비했다고 여기는 듯 하다.

대체 그 추함은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일까?


우리가 보고 아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는 과연 온전히 우리의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의지를 들여 우리의 진보를 기대한다.

더불어 바른 역사관도 없고 철학도 없으며 주체도 없는,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부디 그저 ‘역사적 치매현상’일 뿐이길 바라본다.





참고

역사에세이 (정옥자. 문이당)

「삶의 전기로서의 역사학을 위하여. 김병익」. 『한국사 시민강좌』. 2003/33집

역사에서 희망 읽기 (정옥자. 문이당)

우리시대의 상식론 (박호성. 랜덤하우스 중앙)



아주 오래전에 작성했던 글을 찾았습니다.

마침 한일 무역분쟁 중이기도 하고, 광복절이기도 해서 세상의 빛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박호성 교수님 안녕하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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