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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l 24. 2019

재규어 말고 보석세트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사노 요코라는 작가는 암 재발 판정을 받은 날 재규어 한 대를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백혈병 환자가 된 기자 황승택 씨는 두 번째 재발을 맞닥뜨렸을 때 작은 차 한 대를 병원으로 주문을 해 그 차로 퇴원을 했다지.
사실 이 이야기는 황승택 씨의 책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에서 읽은 내용이다.
그는 일탈 혹은 놓치기 싫은 생의 마지막 순간 또는 가치관의 변화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내게 저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느닷없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두 종류의 보석들로 정말 예쁜 보석 세트를 하나 맞추고 싶다.
마지막까지 예쁘고 화사하게 착용하고 다니다가 고이 보석함에 넣어 우리 딸 줘야지.

튼튼한 상자에 보석함이랑 내가 썼던 글 묶음과 마디 자서전과 논문들, 즐겨 들었던 핸드백 그리고 화사하게 찍힌 사진 한 장 넣어 신랑에게 줘야겠다.
나중에 우리 딸에게 전해달라고.
딴 사람 주지 말고 빌려주지도 말라고.

내게 가족이 내 아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도 친정엄마랑 남편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주저리주저리.
자려고 누워 남편에게 주저리주저리 이 이야기를 하다가 만약에 내가 없어도 우리 아이는 천덕꾸러기로 키우지는 말아달라는 부탁도 했다.
나도 알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그래서 오늘의 주저리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내가 없으면 누가 얘를 지극정성으로 키워주겠어. 그러니 내가 오래 살아야지.”

나는 유병장수할 거고,
병원비가 얼마나 들지 모르니 당연히 아끼고 살 건데, 보석 디자인을 해볼까.
아니다.
할 줄 아는 글이나 열심히 쓰자.



암 재발 선고를 받은 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자동차 매장에 들렀다.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그때까지 외제차는 절대 타니 않았다. 중고 외제차를 타는 녀석들이 가장 싫었다.
내가 들른 곳은 외제차 매장이었다. 그곳에 잉글리시 그린의 재규어가 있었다. 나는 그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나는 국수주의자지만, 예전부터 쭉 마음속으로 잉글리시 그린의 재규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 마지막 물욕이었다.
-죽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지음. 마음산책)



참고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황승택. 민음사)
죽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지음.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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