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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07. 2019

오늘도 해명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머리가 참 많이 자랐다.
항암으로 인한 탈모 이후에는 예전과는 다른 컨디션의 모질이 나온다더니만 정말 그렇다.
나는 탈모 전보다 훨씬 숱이 많고 검은 머리가 나고 있다.
아주 짧았을 적엔 뭔가 상당히 스타일리시해 보이기도 했는데, 검은 곱슬머리가 곱슬곱슬 뻗치고 뻗치는 더벅머리인 지금은 젤 없이는 외출이 불가하다. 하긴 젤로 모양을 단정하게 잡아놔도, 이런 습한 날씨에는 무용지물긴하다.
“자기 곱슬머리구나?”
오늘도 들은 이 말에 나는 또 한참을 해명해야 했다.
사실 별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 없는 건데.
그냥 몰라서 하는 소리인 건데.
난 원래 반곱슬이었다고.
난 원래 짙은 갈색 머리였다고.
항암 탈모 이후에 이렇게 나고 있다고.
난 또 굳이 설명을 하고 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항암 해도 다닐만한가 봐”
이것만큼 억울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꼼짝 못 할 정도의 항암제는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항암은 진행 중이다. 솔직히 쉽지 않다.

툭하면 면역이 바닥을 치고 없던 알레르기가 생겨 온 몸을 긁느라 밤 잠을 설치고, 온갖 약으로 버티고 늘 기운이 없어 아침마다 골골거려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럼에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하나의 표현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린아이를 거의 독박으로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다 보니 전신 항암을 한 다음날에도 라이드 해서 등 하원을 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처방받은 모든 부작용 방지약을 다 챙겨 먹어야 했더랬다.

근데 또 그렇게 움직여야만 해서 나는 그 시기를 잘 견뎌 왔던 것 같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자면 살만하고 움직일만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야만 해서 그런 것인데, 생각해보면 이것도 좀 웃긴 것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되어 의지는 있으나 뜻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을 터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이해는 된다. 통상 암환자가 갖는 그 이미지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도 감사하다.
힘들어도 내 할 일 다 하고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고,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남들처럼 요양병원 같은 곳에서 요양은 못했어도 어떻게든 이 고비가 지나가고 있어서 감사하고,
흰머리가 나지 않아서 감사하고,
머리가 고르게 나고 있어서 감사하고,
짧은 머리가 영 안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감사하다.
그러니 내일은 해명을 좀 줄이고 그냥 즐겨보는 걸 노력해볼까 한다.
이 순간도 곧 지나갈 테니.


2019년 8월


두고 봐.
내 꼭 하고야 만다.
볼륨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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