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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13. 2019

오늘까지 너의 날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아이의 45개월 인생 처음으로 파마를 시켜줬다.
미용실 놀이를 엄마의 기대보다 더욱 즐겨하는 딸은, 역시나 공주님 놀이에 심취해 한 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 동안 얌전히 잘 앉아 있었다.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감동이 밀려오며, 느닷없이 아이와 같이 즉석 떡볶이를 먹어봐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미용실과 같은 상가 1층에 즉석떡볶이 집이 있다.
늘 혼자 돌아다녀서 유리 너머로 구경만 하던 곳.
오늘은 당당히 들어간다.
두 명이 갔으니 우리도 2인분 먹을 수 있다 이거지.
짜장 떡볶이를 주문해 한판을 클리어했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밥도 볶아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느닷없이 또 뭉클.

아이와 처음으로 같이 먹는 즉석떡볶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를 하시며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셨는지, 따님이 여기저기에서 이것저것 사야겠다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안돼. 우리 오늘 과소비했으니까 이제 집에 가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딸이 받아친다.
“싫~어. 나 오늘 소비할 거야.”

입이 댓 발만큼 나온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자마자 택배 한 박스가 도착했다.
예쁜 여섯 살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옷들이 정말 한가득 들어있었다.
“우와 많다. 어머나 예쁘다.”를 연발하며 방방 뛰는 우리 집 45개월 언니.
새 옷 중에서 내일 어린이집에 입고 갈 원피스를 딱 골라놓고선 치킨이라던가 튀김이라던가 치킨이라던가를 주문해 달라고 한다.
오늘 단골 치킨집이 쉬는 날이라 못 먹는다고 알려주니, 택배 아저씨가 가지고 올 거라나.
택배 아저씨가 치킨을 만들지는 않으신단다 아이야.

아이를 멀찍이 떼어놓고, 다 건조된 빨래를 정리하다가 문득 아이가 여름날처럼 자랐다는 걸 깨달았다.
방학 3주 동안 여름날의 나무처럼 키가 자라고, 여름날의 초록처럼 영글었네.
여물어서 말대답을 말대답을 아주 그냥.

그래. 오늘까지는 너의 날로 하자.
내일 개학이니까.
드디어, 개학이다.


앗싸아!


엄마가 아파서

아빠가 바빠서

혹여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할까 늘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시간에 맞춰 성장한 모습으로 늘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고맙고 대견하고 기특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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