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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22. 2019

잉여 인간과 그 자식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암 수술을 받고 난 직후까지만 해도 큰 생각이 없었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며 지금 지내는 것처럼 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항암치료가 확정된 이후, 뭐랄까 눈 앞이 깜깜하고 아찔한 것이 저 어린것을 데리고 그 산을 어떻게 넘을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참 다행스럽게도 같은 병을 앓는 환우들 모임을 통해 정말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보건소에서 암 치료비의 얼마를 지원해주는 게 있고, 재가 암환자 관리를 받을 수 도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바로 보건소에 연락을 했다.


건강검진 제도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검진으로 암을 발견하면 1년에 200만 원인가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 내가 걸린 유방암은 만 40세에 첫 국가검진 대상에 들어간다. 나는 만 35세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만약 내가 그 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했다면, 아니다 나는 그전에 전이되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구나.

요즘은 20대 30대, 아니 10대 유방암 환자도 많다. 젊을수록 암도 공격적이라, 젊은나이여서 더욱 공격적인 항암치료를 처방받곤 한다. 암 환우 카페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임신 중이거나 출산 직후에 발견한 젊은 엄마들이 생각보다 아주 많다. 그 몸으로 암과 싸우며 어린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인생들 말이다.

이건 뭐 아직 보편적인 건강의 흐름보다 너무 빨리 아파서 그런 거라고 합리화시킬 수 있다 쳐도, 재가 암환자 보건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슬픈 것이었다.


“금전적인 지원은 못 받아도 좋습니다. 관내 거주 중인 만 35세 아기 엄마이고 현재 34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제가 곧 항암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양가 어른들 모두 사정이 있으셔서 도움받을 처지가 못됩니다. 홈페이지를 보니 관내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가정방문 등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있던데요, 저도 그걸 신청하고 싶습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말을 잘못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날의 대답은 NO 였다.

안타깝지만 소득이 있는 젊은 암환자여서 도움을 받을 자격이 안된다고 했다. 보건소와 시의 복지정책을 찾아보니, 정말로 암환자 지원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나이가 많고 소득이 적은 중증환자에 한정되어있었다.

연세 있는 분들은 장성한 자녀들이 병원비도 보태드리고 보호자도 되어드리던데.

중증질환은 나이 들고 가난한 사람들만 걸리는 게 아닌데.

난 내가 환자고 보호자인데.

어디서 보호자라는 말은 배워서, 자기가 엄마 보호자라고 떠드는 내 딸은 이제 겨우 4살인데.

한창 벌어 모아야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한참 지출을 하며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는 알아서 살아 남으라는 뜻인가.

그 시기는 교회를 비롯해 동네에 나를 아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내가 암에 걸렸고 항암을 해야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던 때였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때 나 좀 불러내 달라고.

반찬을 좀 많이 하게 되면 나한테 좀 나눠달라고.

혹여 심심하거나 시간이 남거든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살았나 죽었나 확인만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한다고. 도와달라고. 내가 나중에 다 갚겠다고.

그런 시기여서 였는지 참 우울하고 힘들었다.

국가로부터 너는 돈도 못 벌고 당장 애도 더 못 낳는 젊은 잉여인간이라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며 사각지대로 내동댕이 쳐진 기분이었다. 마침 아이의 어린이집 이동 문제가 겹쳤던지라, 꽤 오랜 시간 나는 이 깊은 우울을 견뎌내야만 했다.

나와 내 자식은 잉여인간이라고.  



아, 늦게 전에 주민세 내야지.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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