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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23. 2019

내가 서 있는 그곳, 보육 사각지대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산정특례라는 그 좋은 복지정책에 마냥 감탄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유방암 환우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어린아이가 있는데 투병생활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글을 볼 때마다, 산정특례 서류를 들고 동사무소에 가면 어린이집을 종일반으로 바꿔준다고, 아이 돌봄 서비스에 가입을 해두라고, 소득에 따라 이용 요금에 차등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저렴한 금액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답글을 다는 게 한때의 취미이자 소일거리였다.

당장 내 눈 앞에 벌어질 일은 몰랐던 거지.


발등에 불은 아이가 다니던 영아전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원을 옮겨야 할 시점에서야 떨어졌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어린이집 졸업 후 병설유치원에 보내는 것이었다. 마침 재개발로 인해 관내 어린이수가 적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이었고, 아이에게 조기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부모인지라 우리에게 최고의 대안은 병설유치원이었다.

방학이 좀 길고 하원이 이르면 뭐 어때. 내가 데리고 양재천으로 청계산으로 돌아다니지 뭐.


하지만 내가 암 수술을 받고, 수술 전 예상과는 다르게 항암을 1년 넘게 하게 될 처지가 되면서 일찍 파하고 방학이 긴 병설유치원은 원해도 갈 수 있는 곳이 못되었다. 병원에 자주 가야 하고,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기에, 그다음의 대안은 성장한 아이의 활동반경과 환경을 생각해 시립어린이집이 최선이었다. 깨끗하고 시설 좋고, 시간연장도 되며  아이의 친구들이 이미 다니고 있는 곳, 무엇보다 비용이 추가로 많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 곳, 그런 곳이 시립어린이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입소 인원도 얼마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외벌이에 외동인 우리 가정은 가점도 없어서 대기순서에서도 맨 마지막 차지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했다. 무난하게 잘 자라줬다고는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머리가 다 빠진 몰골로 골골거리는 꼴을 본 아이는 급격한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다. 그런 상황에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수도 없고,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감사하다고 보내기도 싫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도와달라며 동사무소와 시청의 문을 두드려도 보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린이집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에는 시간연장 등의 구제방법이 있지만, 입소하는 것은 알아서 하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게요, 그간 참 감사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감사한 건데, 나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원장 선생님과의 상의 끝에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부모협동조합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연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유분방한 아이이고, 주변을 보며 빠르게 학습하는 성향이니 연령통합에 자연물과 많이 접하는 발도르프 교육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조언이 있었다. 품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오히려 힘든 때일수록 협동조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키우기 위한 품이 많이 드는 공동육아의 세계로 들어섰다. 어린이집 입소 보증금을 내기 위해 재발되거나 혹여 항암제가 비보험이 되면 쓰려고 묶어 뒀던 보험금을 허물었다. 의료보험제도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비보험인 항암제의 경우 1년에 약값으로만 2천만 원 정도를 지출해야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 아직 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신약"의 경우면 특히 더욱 그러하다. 여하튼 그렇게 입소를 시켰다. 아이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아드리아마이신 2차 항암을 앞두고 아이가 많이 아팠다. 하필 전염성 바이러스가 검출되어 아이의 컨디션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급하게 시간제 보육 선생님을 구했다.

항암 당일과 그다음 날 우리 아이를 돌봐주실 분을 찾습니다!

이틀간 긴 시간을 맞춰야 하는 선생님을 구하는 일이라, 어려울 것이라는 센터의 예상을 뒤엎고 선생님을 구할 수 있었다. 항암 하루 전 날이었다. 적응이고 뭐고,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와 둘이서 긴 시간 동안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가 너무나 걱정되었다. 가뜩이나 눈치 빠르고 겁이 많은 아이인지라 무서워하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눈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서, 달리는 지하철에서도 뛰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암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날도 채혈실과 종양내과와 항암실은 아침부터 대 만원이었다. 지연과 지연과 지연. 혹시나 예상시간보다 더 늦을까 봐,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음에도 마음이 조급했다. 교회와 동네 아는 분들에게 우리 집에 잠깐씩 들러 아이를 한 번씩이라도 들여다봐 달라고 부탁도 해놨었다. 아무래도 얼굴 잘 아는 이모들이 와서 보고 가면 아이도 불안이 덜 할 것 같아서였다. 노심초사 방방 뛰는 모습이 보였나 보다. 항암주사 오가는 길에 동행해주신 전도사님께서 늦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한 말씀을 더 얹으셨다.

혹여 늦으면 교회 언니들이 아이들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서 아이랑 놀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 날은, 정말이지, 보육 공백 하나를 메우기 위해 온 동네가 동원된 날이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부작용이 극심한 첫 번째 항암제인 아드리아마이신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하원 후에 아이를 씻기고 먹이는 일에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저녁시간 도움은 나 말고도 원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 데다, 선생님들도 저녁에는 쉬시고 싶어 하시니까.


웬만한 유치원 정도로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공동육아 협동조합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우리 가족은 아이와 함께 잘 자라고 있다. 방학이 좀 길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는 특성상 방학에도 어린이집에 종종 모이다 보니 어찌어찌 수월하게 3주의 방학이 지나가 있었다.

다시 기관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와 제도권 보육의 보호를 받고는 있지만, 혹여 내 심장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쓰러진다거나 재발을 한다거나, 항암 일정과 아이의 컨디션 저하가 겹치는 상황이 또 벌어질까 봐 오늘도 나는 온갖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다 그리며 살고 있다.

환자인 나는 나 혼자 보호자까지 다 할 수 있어도, 아이는 스스로 보육은 할 수 없으니까...


보육제도가 날로 좋아지고 있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런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분명 존재한다.

엄마가 아프지 않더라도 여러 사정으로 안정적인 제도권 보육이 절실한 가정이 많음을 알기에 형평성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와 둘이 손을 잡고 도로 위 한 복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그 기분은 영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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