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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12. 2019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입맛도 없고 마냥 졸리다.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집 33개월 따님은

엄마 우유.
엄마 빵.
엄마 책.
엄마 일어나.
엄마 가자 가자 밖에.

그래서 아이와 마을버스를 타고 단골 카페에 갔다.

여담이지만, 차 사고 나던 날 빠방이 없다며 슬피 울며 마을버스를 거부했던 딸은 이제 마을버스를 좋아한다. 노란색 타요를 타고 이 작은 도시 한 바퀴를 다 돌고, 종점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말뻐 타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그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래. 좋은 자세다.’

카페에서 우연히 교회 권사님들을 만났다.
얼결에 피자와 커피를 얻어먹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카톡방에 툭 던진 그게 무슨 일이냐는 안부 겸 질문은 그 세대의 여자들이 많이 걸린다는 이 병에 대한 정보와 경험담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수술하면 한쪽 팔이 허벅지만큼 붓는다고 했다. 병원 외래에서 봤던 그 팔뚝이 내 팔뚝이 된다는 말인 거지.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중년 여성들은 일 년 정도 요양병원에 다녀온다고. 가면 병원 통원도 시켜주고, 밥도 잘 나오고, 마사지도 해준다고 한다. 산후조리원 같은 거네. 얼마 전까지는 그게 실비로 처리가 됐다는데 지금은 모르겠다고.

정말 잘 먹고 잘 쉬어야 하니 누가 아이라도 대신 돌봐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시부모님 도움을 받으라고. 그리고 친정 도움도 받으라고.

그리고. 아직 한 달 남았으니까, 교회 와서 핸드벨 연주할 생각 하지 말고 수술 후에 어떻게 살지 모든 걸 계획해놓고 준비해놓고 입원 들어가야 한다고.
여자는 병나고 아프면 세상 혼자라고.

그게 여자 팔자라고....
잠이 오지 않는다.
같은 병을 앓은 분의 블로그 글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알면 알수록 쌍꺼풀 수술하듯이 수술하고 퇴원하고 통원 오가면 되는 문제가 아님을 절감한다.
그럼 난 어떡하지.

시가라는 곳은 애초부터 도움이라고는 없는 곳이었다. 암 판정을 받고 애 아빠가 아이라도 부탁할 수 있을까 싶어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받았지. “네가 수술하면 내 아들 밥은?” 이런 말 듣지 않은걸 감사히 여기고 있다.

친정은 이미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게다가 두 분이 나란히 요양병원에 가셔야 할 처지다. 가서 비빌만한 곳이 못된다.

형제... 나 외동이다. 그런 거 없다.
혹여 아이를 제때 하원 할 수 없거든 자기가 하원 시켜 자기 집에서 아이들과 먹이고 재우겠다는 동네 친구가 있지만, 연년생 어린애 키우는 집에 어떻게 부탁을 하나.

요양병원. 푸하하 그곳은 천국이고 소망이고 로또 같은 얘기이네. 보양식이고 거슨요법이고, 당장 한 팔로 운전해 아이를 등 하원 시켜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모든 게 불가능이다.

아이 등 하원 도우미를 알아봐야겠다.

엄마가 지지리 궁상떨고 살지 말랬는데.
엄마는 나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궁상맞고 처량 맞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래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곧 적응도 하고.
지금은 좀 많이 슬프지만.
비록 내 딸은 내 팔이 있어야만 잠이 들고, 수술하면 다른 팔을 내줘야지 어쩌냐는 인간이 신랑이라 속이 좀 터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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