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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12. 2019

고민과 분노의 과정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수술을 미루거나 포기해야겠다.
지금 내 상황에서는 요양도 회복도 거의 불가능하다. 하필 생존율도 높고 재발률도 높은 병에 걸릴 건 뭐람. 그러니 수술보다 내 살 궁리를 찾는 게 더 급하고 큰 일이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방법이 없다.
입원도 혼자 하고 병원에도 혼자 있고 퇴원도 혼자 하고, 퇴원하고 한 팔로 운전해서 아이 어린이집 하원을 시켜야 할 테니까. 모든 게 다 이 모양일 테니까.

그나마 가장 가깝게 의지할 유일한 사람이 신랑인데, 남의 편이 될까 봐 부득불 신랑이라는 호칭을 써 왔다만, 유방암에 걸린 게 내가 젊어서 그렇고 나이 들어 폐경되면 안 걸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나 하는 인간이라 니 속이나 내 속이나 피차 답답하다. 그래 놓고선 자기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
저 큰 아들이 보호자 역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힘들어 누워 있으면 아이랑 밥이나 잘 챙겨 먹으려나.

결혼을 하나 안 하나, 나는 세상천지에 혼자다.
가족이 있으면 뭐하니.
결혼해 가족의 범주가 넓어지면 뭐하니.
이러나저러나 늘 혼자고, 나 혼자 스스로 알아서 다 해야 하는걸.
혼자서도 잘해요. 이따위 것이 타고난 운명이라면 어깨나 가볍게 그냥 혼자 살 것을.

태어나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
아이를 낳은 건 잘한 것 같기도 했는데, 태어나 1000일도 되지 않아 온갖 일을 다 겪게 해서 생각할수록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러니 이도 잘한 일이라고 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눈 앞이 깜깜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데, 햇살은 왜 이리 좋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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