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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Oct 06. 2019

마주이야기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하루 종일 아픈 엄마한테 서운한 일이 많았던 아이가 결국 화를 냈다.

“엄마 나한테 죽는다아!”

죽는다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떠들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혼내긴 해야 했다.

그렇게 한바탕 혼이 나고, 달래고, 재우는 중이었다.

신랑의 아는 지인네가 오늘 유도분만에 실패해 내일 다시 시도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아, 내일은 꼭 순산 하기를 기원한다고 전해줘.”


우리 집 아이도 유도분만으로 태어났다.

순간 아이가 그때를 기억할지 궁금해졌다. 아이를 재우다 말고 생각난 김에 또 물어봤다.


아빠가 물었다. “우리 아기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 싫었어요?”

네. 엄마 뱃속이 좋았어요. 나오기 싫었어요.

왜 나오라고 했어요?

...

그거는 더 오래 있으면 사섭이가 다칠까 봐 의사 선생님이 이제는 나와야 한다고 그래서 그랬어.

네가 예정일에서 일주일이 지났는데 나오려고 하지 않았거든.


“내려올 때 힘들지 않았어?”

안 힘들었어.

...

사실 이 얘기는 작년부터 들었었다. 힘들지 않았고 나와보니 환한 곳에서 의사 선생님이 발을 잡아줬다고도 말해줬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네 뒤에 아기가 또 있었어?”

응. 하나 있었어.

까맣고 눈이 작았어. 꼬리가 있었어.

...

이것저것 물어 들은 걸로 종합해보면, 성격 확실하고 외모는 아빠를 닮은 아들로, 딸아이는 그 동생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태중에서 호되게 혼내고 나왔다는데, 엄마는 이걸 징글징글하게 싸우고 나왔다는 걸로 알아 들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뭐가 제일 행복했어?”

놀았어. 기림 기리는 거 하고 재미있었어. (그림 그리며 노는 게 재미있었어)

아빠가 책 읽어주는 거랑 엄마가 핸드벨 하는 게 좋았어.


“그럼 뭐가 제일 슬프고 싫었어?”

엄마가 종이 윙윙 이할때 재미없었어. (엄마가 종이 가지고 일할 때 재미없었어.)

그리고 바늘에 찔릴까 봐 무서웠어. 바늘을 피하는 게 너무 아팠어.

...

맞아 엄마 그때 매일 울면서 일했어.

...

다른 건 다 바로 알아듣겠는데 바늘은 뭔 소리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고위험 산모가 아니라 양수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다 보니 초음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초음파 장비가 움직일 때 배 안이 꿀렁하며 바늘이 나왔고, 아이는 그걸 피하느라 움직이는 게 싫었다고 했다.

정말이지 우리 딸은  초음파 검사에 비협조적인 태아였다. 초음파 보는 의사들마다 진땀을 뺄 정도였으니까.

발을 봐야 하면 얼굴을 들이밀고, 앞태를 봐야 하면 뒷모습을 보여줬다. 다리를 봐야 하는데 포개고 앉아 꼭꼭 숨겨놓고.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의 성별을 출산 직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아이가 활발하고 개성이 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무서워했던 거였다...


“엄마는 바늘 안 아팠어?”

응. 엄마는 초음파 하는 거 안 아팠어. 그거는 아가가 잘 자라고 있는지 보느라 했던 거야.

엄마 따라 병원 가서 배에 쓱쓱 할 때 오징어도 찾고 문어도 찾았지? 그렇게 해서 우리 아가 얼굴 봤어.



“근데 왜 엄마한테 왔어?”

엄마가 좋아서. 하늘나라에서 엄마를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데 왔어.

"어떻게 왔는데?"

아빠가 데려다줬어. 하늘나라에서 저거 타고 왔어.

(저것이란, 황새)



기타 등등.

태어나보니 아빠가 잘생겼어.

(어딜 봐서..?)



다음에는

퇴원하던 날 쫄쫄 굶은 일과, 임산부 혼자 홍콩이랑 마카오 여행 갔던 거 물어봐야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종교인들 기내식이 먼저 나오자 우리 밥이 나올 때까지 격렬하게 태동을 했던 아이였거든. 너란 황사섭이가 말이지.


동네 국수집이 입맛에 맞으신 우리집 47개월 어린이


걱정 마 엄마가 암 치료 끝나고 준비해서 동생 낳으면 너랑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서, 네가 다 이길 거야.

근데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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