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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Sep 27. 2019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아기 엄마의 투병 일기

정현종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한다.
인간관계에 찌들어 있던 대학원생 시절, 정말 앉아있기 싫었던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티브이 화면 속에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 스크립트로 지나간 게 처음이었다.


모든 순간이 꽃 봉오리인 것을.
그 순간이 노다지였던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지난여름이었다.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또 한쪽 가슴을 다 도려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듣고 나는 사진관을 예약했다.
프로젝트명은 자화상.
내 생애 다시 못 올 가장 예쁜 시절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인화된 사진은 수술을 마치고 항암을 앞두고야 찾을 수 있었다. 몇 안 되는 흑백 필름들 속 나는, 전부 눈 속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전절제는 피했지만 항암에 당첨되었고, 탈모가 예정되어 있던 시점이었다. 사진은 볼 때마다 너무 슬퍼서 고이 접어 서랍장 안에 넣어버렸다.


https://brunch.co.kr/@mintc/16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도 몇 개월이 더 되었다.
그 날처럼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정신없이 웃고 떠들며 촬영을 하다 문득, 다시 내게 이런 날이 왔다는 것이 떠올랐다.

젊유애라고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젊은 유방암 환우들이 많이 있다고, 우리 좀 돌아봐달라고, 제도를 정비해달라고, 환우들이 만든 단체라고 했다.
그곳을 통해 우연히 만나게 된 기회였다.
어딘가에 홍보용으로 쓰일 사진들을 찍으며 생각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이었다고.
지금 이 순간 또한 내게 다시없을 꽃봉오리라고.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 또한 다 지나가는 시간이었다고.
다시 못 올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것은 사실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었다고.

오늘은 표적 항암 허셉틴 12차가 있는 날이다.


같이 사진을 찍었던 20대 친구는 이번 주에 가슴에 심어놓은 확장기 관련 수술이 있다고 했는데, 잘했는지 모르겠다.


[네이버 블로그] 블로그를 소개합니다.

젊은 유방암 애프터케어 젊유애
https://m.blog.naver.com/youngwb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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