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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Oct 20. 2019

기나긴 하루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엄마 나 아파서 황금성에 못 가겠어요.”


설득은커녕 준비할 시간조차 빠듯한 아침이었다..
꼭 자기 병원을 제일 먼저 가야 한다길래,
애님 병원 갔다가
어린이집 조퇴 찍고
딱 신호위반 피할 만큼 밟아서 내 병원에 도착했다.
원래 병원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감기에 걸린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료 예약 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했지만 종양내과는 지연이 늘 있는 일이라 얼추 시간은 맞춰 들어갔다.

진료를 보고 수납하기 전에 보험 통원 실비 면책기간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떠 버렸다.
그동안 아이는 전에 과자 선물해 준 이모를 만나 같이 놀고, 엄마 주사 맞는 거 구경한다고 신이 나 병원 로비에서 춤을 췄다지.


병원 로비에서 빙글빙글 춤추는 어린이


무인기에서 출력한 주사실 팔찌도 오늘은 아이가 붙여줬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왔다.
어린이는 항암 주사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주사실 앞 대기실에 앉혀놓고, 아이가 한눈에 엄마가 앉은자리를 볼 수 있는 자리로 배정받아 앉았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안 되는데, 죄송해요.”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의 마음을 담은 인사를 전했다.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이 말을 이어 주셨다.
“어쩌다 가끔 아이랑 같이 오는 환자분이 계세요. 괜찮아요. 아이 걱정 마시고 주사 잘 맞으세요.”

그러게.

아이와 병원에 종종 동행을 하긴 했지만 항암 주사실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런데 데리고 오면 안 되는 건데.
주사실 바로 앞에 앉아있던 아이는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앉아 엄마가 들어간 커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허벅지 피하주사라 꼭 커튼을 치고 맞는다.
그나마 오래 걸리지 않는 약제여서 참 다행이다.

어릴때 와 봤으니, 너는 이런 곳에 올 일이 절대 없기를


엄마가 드디어 주사를 맞았다고 춤을 추며 항암 주사실을 나온 우리 집 어린이는, 빵 하나를 손에 쥐고 카시트에 앉아 깊은 낮잠을 주무셨다.

허셉틴을 맞고서야 보험 담당자와 통화 연결이 되었다. 통원 실비 면책기간*을 확인하고 지난 영수증들 재발급까지 마치니 어느새 오후 2시가 지나있었다.

(* 면책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최초 발병일 기준으로 1년이 지나면 6개월 동안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다. 나는 수술 후 꾸준히 통원 의료비를 청구해서 지난 6개월간 통원 실비가 면책기간에 들어가 있었다. 그 기간에 쓴 항암제 값과 병원비는 보험사에 청구할 수 없다는 뜻.

예전 실비라는 게 보상 금액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정말 좋은 보험이라고 알고 있었다. 막상 1년 넘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나니 이게 그다지 좋은 게 아님을 깨달았다. 면책기간 없이 총 보상액 제한이 있는 요즘 실비가 훨씬 낫다.)


하루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는데 왜 나는 초저녁 즈음에 와 있는 것 같았을까.
기분이 뭔가 이상해서 차 가지고 나온 김에 인천공항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오고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몸도 힘들고, 하필 불타는 금요일 아니던가.

금요일은 퇴근길 정체도 빨리 시작되니까.

오늘은 표적 항암 허셉틴 13차가 있던 날이었다.
이제 다섯 번 남았다.

아 몰라 피곤해.
혼자 비행기 타고 어디 아주 멀리 가고 싶어.



+,
<우리 집 언니 이야기>

“엄마 주사 맞으니까 오늘은 내가 엄마 지캬줄 거아.”

찔찔거리던 코는 이비인후과에서 빼주니 금방 상태가 좋아졌다. 그럼에도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고 굳이 엄마 병원에 따라온 이유가 있었다.
지난 저녁, “엄마는 내일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가는 날이니까 너는 낮잠 자고 간식까지 다 먹고 산책 다녀온 다음에 만나자.”라고 얘기해준 게 화근이었다.

종양내과 진료실.
진료실 문이 열리자 자연스럽게 들어가 환자용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 말고 우리 집 어린이가.
환자는 난데.

심장 기능이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치료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 말고 허셉틴을 계속 맞으라는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이었다.

우리 집 보호자께서도 한 말씀 거드셨다.
“나도 애기 때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벼언에 와봤는데..”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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