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아픈 나와 아이를 두고 시가에 가서 감감무소식이었던 남편에게 난 화가 도저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남편대로 답답해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가운데서 눈치를 보는 상황.
이젠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지쳐서 그냥 혼자 삭히고 앉아 있는데 아이가 품에 와 안겼다.
어느새 품에 안아 다리로 내 몸을 빙 두르고도 남을 만큼 자란 아이를 안고 정수리 냄새를 맡다가 문득 아이 곁에 있는 이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이 아이를 얼마 보지 못할 수 도 있다.’
사실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라도 나면 헤어지는 것이고,
나는 항암 투병을 정성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는 신세이니,
이 재발 잘되고 전이 잘되는 암에게는 더더욱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아이는 잠들고 나와 그는 잠 못 들던 어느 밤, 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없는 날에 아이와 살 것을 생각해봐.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보다 일찍 떠날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앞으로 시가에 갈 때는 아이를 데리고 가.
그래야 아이도 친가에 적응하지.
늘 그런 일 없을 거라고 부정만 하지 말고.
그리고 그동안 나 몰래 담배 피우다 걸린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솔직히 나에게 간접흡연이 치명적인걸 알면서도 피운건 이미 별 생각이 없어 그런 거라고 밖에는 이해가 힘들어.
그러니 내가 없을 때 아이랑 살 일들을 좀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해.
그리고 부탁인데, 내가 없는 날이 오면, 우리 아이 천덕꾸러기로는 만들지 말아 줘.
그 후로 이틀 동안 우리는 말을 섞지 않았다.
...
아이들 문제로 친구와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주말부터 우리 부부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았던 게 신경 쓰였던 친구의 물음에, 에라 모르겠다, 내 속상한 것들을 다 털어놔 버렸다.
남에게 신랑 흉보는 게 아직도 내 얼굴에 침 뱉는 기분이라 싫으면서도, 내가 미치게 힘든 날에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며.
한참을 듣던 친구가 말을 꺼냈다.
네가 힘들어서 그래.
내가 가서 반찬 해줄까? 청소해줄까? 아님 우리 애들이랑 사섭이 같이 놀릴까? 뭐가 필요하니?
내가 보기엔 그래.
네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그리고 공대 출신인 네 남편은 말을 잘할 줄 몰라.
너는 지쳐서 말도 하기 싫고 그 사람은 말을 잘 못하고. 그래서 말인데 부부상담을 받아보는 거 어때?
솔직히 네가 병원 다닐 때 그 흔한 휴가 한 번 안 쓰고 너 혼자 다니게 하는 건 옆에서 봐도 너무 화가 나지만, 그간 네 옆에서 보면 너희 신랑은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우직하게 감당하는 사람 같아.
그러니까 친구야.
우선 네가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도서관 지하 주차장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워커홀릭 짠돌이가 과연 상담은 받겠다고 할까.
그래도 내가 좋은 친구들을 곁에 뒀구나.
...
아이를 데리러 가는 하원길,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부부상담 같은 거 받아볼까?
한 번 생각해보자던 남편에게서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녁에 해물찜 먹으러 나갈까?
...
오늘도 또 어떻게, 이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외출하기엔 너무나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