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이번엔 어느 쪽 맞으실 차례예요?”
표적 항암인 허셉틴을 허벅지 피하주사로 맞는다.
매번 양쪽을 번갈아가며 맞아야 한다며, 지난번에 어느 쪽 다리에 맞았는지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주사를 놔주신 분이 나중에 가도 순서를 기억하기 쉽도록 왼쪽부터 시작하자고 하셨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허셉틴의 투여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왼쪽부터 시작했는지 오른쪽부터 시작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기 때문이다.
맞아, 왼쪽부터 시작했... 을거야.
글씨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잖아.
그래서 매번 항암주사실 접수를 하고 나서 지난 투병일기를 찾아 읽는 게 습관이 되었다.
투병일기는 기억하거든.
이번 투약이 몇 번째인지, 그러니까 이번엔 어느 쪽 다리에 맞아야 하는지 미리 생각을 해놔야 간호사님이 이번엔 어느 쪽이냐 물을 때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다.
그거 차트에 적혀있지 않냐고?
그게 적혀있으면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볼까?
어제는 아이를 데리고 온천에 다녀왔다.
방사선과에서 온천욕을 금한 기간도 지났고, 날이 추워서인지 내 몸에 한기가 들어서인지 등골이 너무 싸늘해서 뜨신 물속에 들어가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 온천이 뭔지 기억이나 하는지, 어쨌든 큰 목욕탕에 가볼 거냐 물으니 아이가 덥석 물었다.
“좋아요! 오인천 큰 몽욕탕 가요오!!”
집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한산한 대욕탕.
아이 돌 지나고 제주도 산방산 온천에 데리고 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 뜨시고 넓은 곳은 말 튼 이후로 처음이었다. 혹여 소리가 울리고 시끄럽다고 아이가 싫어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었는데, 엄마의 염려가 무색할 만큼 아이가 좋아했다.
탕 안에 들어가 앉아 “으어 좋다아.”를 연발하는 48개월 어린이라니.
나 참.
몸을 불리고 때를 밀고 밀어주다가, 이렇게 대중탕에 온 게 1년도 훨씬 전이라는 게 떠올랐다.
수술받으러 입원하기 전이 마지막이었으니까.
작년 이맘때쯤 아드리아마이신을 시작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내 몸엔 어떻게 봐도 티가 나는 수술 자국이 남아있는데, 그 누구도 힐끗 거리는 사람이 없네!
나는 탈가발을 일찍 했다. 사실 남이사 뭐라 하건 내가 편하고 좋은 게 우선이라고 여기며 지낸 경우라, 가발도 항암 비니도 일찍 벗어버렸다.
힐끔거리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온 이들의 대부분은 나를 예술가이거나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인 줄 여길뿐이었다.
하지만 대중탕은 좀 달랐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앞으로 난 가족탕이나 다니겠구나 싶기도 했다.
정말 별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온천 대욕탕에 들어가 앉아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나 뿐이라는 사실을.
역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나만 신경 쓸 뿐이야.
내 몸에 신경 쓰는 이도 나뿐이고.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오늘은 허셉틴 14차가 있었다.
이제 네 번 남았다.
항암주사 대기실 의자에 쳐박혀 있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너무나 부럽고 예쁜 커플이 내 앞에 앉아있었다. 단연코, 커플코트가 부러워서 그런건 아니다.
*혹여 초상권에 문제가 된다면 연락 주세요. 바로 내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