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수능날 아이와 점심을 먹으며 클래식 fm을 듣는다.
아이는 내 몸이 안 좋고 날이 너무 추워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거지만, 문득 이런 날이 언제 또 있을지 모르겠어서 시간이 멈춘듯했다.
작년엔 수능이라는 게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그래도 올해는 수능날도 알고 지나간다.
감상에 젖어 2분이나 지났을까.
딸아이가 어서 빨리 옷을 입으라고 성화다.
관악산에 가셔야겠다며.
엄마는 날이 추워 그저 집 안에 들어앉은 겨울 곰이 되고 싶은데.
얘야...
산에 갔다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축제기간을 제외하고는 늘 한적한 도로가 비상등을 켠 자동차들로 복잡하다.
경찰차까지 보이는 걸 보니 잠시 잊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오늘이 수능날이라는 것을.
“엄마. 나 마니 크~면 혼자 해꾜 갈 수 이써요. 혼자 저기 해꾜 갈고에요.”
아이가 등원 길마다 나중에 갈 거라고 말하는 고등학교가 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내가 수능을 보던 날도 그랬다.
날은 추웠고, 비상등 깜박이는 차들 속에 우리 차가 있었다. 앞으로 14년 후에도 비슷한 풍경 속에 내가 있을 테지만 전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때가 오면 수능이라는 게 없어지려나.
아님 내가 없으려나.
아니, 어쩌면 작년처럼 정신없이 살다가 어찌어찌 정신 차려보니 수험생 엄마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절의 변화를 알고 이 계절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에 집에 있던 폼폼이와 솔방울을 달아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었다.
도토리 모자를 만들어 달아 주니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이가 당장 도토리들을 더 주워오겠다고 난리던데, 얘야 땅이 좀 마르거든 주워오렴.
오늘 수능을 치른 아는 집 귀한 딸내미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행운을 빈다.
그리고 당장 도토리 주으러 나가야겠다는 우리 집 귀한 딸내미는...
하아.
얘야 장갑 좀 찾자.
그래도 이게 행복이다.
시절의 변화를 알고 이 계절을 보낸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