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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Dec 07. 2019

마카오에 가고 싶었어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남편과 아이가 여행을 떠났다.

아픈 나를 두고 집을 비워도 될지 고민하던 남편에게  우리 때문에 리조트 예약을 취소하면 같이 여행 가는 다른 집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니냐며 그냥 잘 다녀오라고 등 떠밀었지만, 사실 속내는 다른데 있었다.
그냥 혼자, 하루 종일 자고 싶었다.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정 아프면 지체 없이 응급실로 갈게.
119 불러서 타고 갈게.”
사실 혼자 있으면 응급실 가는 일도 훨씬 가뿐하다. 집 나서기 전까지 챙겨놔야 할 일들이 없어서.

“나 다크서클 내려온 것 좀 봐.
진짜 힘들긴 했나 봐.
자기가 여행 가면 나는 혼자 밤 비행기 타고 마카오에 갈 생각이었는데...”

초기 폐렴 진단을 받고 나흘 밤을 거실 소파에서 앉은 채로 잤다. 그렇게 자야 그나마 기침이 잦아들어 쪽잠이라도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이 잡히기까지 삼일.
두통이 잡히기까지 하루 더.
하지만 기침 가래는 아직.
폐렴으로 사람이 죽을 수 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잘 먹어야 이긴다며 꾸역꾸역 먹으면 여지없이 게워냈고, 속이 약해져서인지 평소에 잘 먹던 진해거담제를 울면서 먹고도 다 토해내기를 반복했다.
하필 처방받은 약에서 아드리아마이신 맛이 났다.
꼭 먹어야 하는 약에서 빨간 항암제의 여운이 느껴질 줄이야. 어쩌면 향도 맛도 그리도 똑같은지.

비실비실 소파에 앉아 여행 짐을 꾸리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이 황금 같은 자유부인 찬스에 여행도 못 가고 놀러도 못 나가는 내 처지가 처량했다.
원래 내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어린이집 일일 보조교사를 하고 바로 짐을 꾸려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러 가고 있어야 했다.
임신했을 때 혼자 홍콩-마카오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카지노에서 양껏 놀아보지 못한 게 그렇게 두고두고 아쉬워서, 이번에는 기어코 그 미련을 털어보리라 전의를 불태우던 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마카오는 개뿔.
내 건강을 염려하던 어린이집 언니들에게 철석같이 장담했던 보조교사도 펑크내고, 아이 등 하원도 겨우 시키는 처지다.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나를 너무 과신했다.
표준치료 막바지라 버티는 힘이 빠졌다고 면역력이 약해진 것 같다고 내가 내 입으로 말하고 다녔으면서, 어쩌면 나는 이렇게도 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

“티켓팅 해놨음 어쩔뻔했어.”

생전 처음 가 본 카지노가 무서웠다. 임신 중이라 더 그랬을까. 부른 배를 당당히 들이밀고 들어갔다가 배팅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부랴부랴 나온 게 너무 아쉬웠다는 나에게 남편은 내년에 같이 다녀오자고 했다.
내년에 같이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 관리 잘하라고.

자가격리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턱 아래까지 내려오던 다크서클이 콧방울 언저리로 올라왔고, 기침은 좀 잦아들어서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아빠와 여행을 떠난 우리 집 49개월 언니는 눈썰매 드리프트 기능을 습득했다고 하며,
나는 지금이라도 어디라도 놀러 나갔다 오고 싶은 충동을 성공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그리고 마카오 카지노는 어린이 출입금지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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