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남편과 아이가 여행을 떠났다.
아픈 나를 두고 집을 비워도 될지 고민하던 남편에게 우리 때문에 리조트 예약을 취소하면 같이 여행 가는 다른 집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니냐며 그냥 잘 다녀오라고 등 떠밀었지만, 사실 속내는 다른데 있었다.
그냥 혼자, 하루 종일 자고 싶었다.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정 아프면 지체 없이 응급실로 갈게.
119 불러서 타고 갈게.”
사실 혼자 있으면 응급실 가는 일도 훨씬 가뿐하다. 집 나서기 전까지 챙겨놔야 할 일들이 없어서.
“나 다크서클 내려온 것 좀 봐.
진짜 힘들긴 했나 봐.
자기가 여행 가면 나는 혼자 밤 비행기 타고 마카오에 갈 생각이었는데...”
초기 폐렴 진단을 받고 나흘 밤을 거실 소파에서 앉은 채로 잤다. 그렇게 자야 그나마 기침이 잦아들어 쪽잠이라도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이 잡히기까지 삼일.
두통이 잡히기까지 하루 더.
하지만 기침 가래는 아직.
폐렴으로 사람이 죽을 수 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잘 먹어야 이긴다며 꾸역꾸역 먹으면 여지없이 게워냈고, 속이 약해져서인지 평소에 잘 먹던 진해거담제를 울면서 먹고도 다 토해내기를 반복했다.
하필 처방받은 약에서 아드리아마이신 맛이 났다.
꼭 먹어야 하는 약에서 빨간 항암제의 여운이 느껴질 줄이야. 어쩌면 향도 맛도 그리도 똑같은지.
비실비실 소파에 앉아 여행 짐을 꾸리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이 황금 같은 자유부인 찬스에 여행도 못 가고 놀러도 못 나가는 내 처지가 처량했다.
원래 내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어린이집 일일 보조교사를 하고 바로 짐을 꾸려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러 가고 있어야 했다.
임신했을 때 혼자 홍콩-마카오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카지노에서 양껏 놀아보지 못한 게 그렇게 두고두고 아쉬워서, 이번에는 기어코 그 미련을 털어보리라 전의를 불태우던 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마카오는 개뿔.
내 건강을 염려하던 어린이집 언니들에게 철석같이 장담했던 보조교사도 펑크내고, 아이 등 하원도 겨우 시키는 처지다.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나를 너무 과신했다.
표준치료 막바지라 버티는 힘이 빠졌다고 면역력이 약해진 것 같다고 내가 내 입으로 말하고 다녔으면서, 어쩌면 나는 이렇게도 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까.
“티켓팅 해놨음 어쩔뻔했어.”
생전 처음 가 본 카지노가 무서웠다. 임신 중이라 더 그랬을까. 부른 배를 당당히 들이밀고 들어갔다가 배팅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부랴부랴 나온 게 너무 아쉬웠다는 나에게 남편은 내년에 같이 다녀오자고 했다.
내년에 같이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 관리 잘하라고.
자가격리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턱 아래까지 내려오던 다크서클이 콧방울 언저리로 올라왔고, 기침은 좀 잦아들어서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아빠와 여행을 떠난 우리 집 49개월 언니는 눈썰매 드리프트 기능을 습득했다고 하며,
나는 지금이라도 어디라도 놀러 나갔다 오고 싶은 충동을 성공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그리고 마카오 카지노는 어린이 출입금지 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