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Dec 09. 2019

할아버지 발 냄새나요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내로남불이라는 게 이런 걸까.

응급실에서 잡아준 종양내과 진료 예약이 있는 날이다.
역시나 20분 지연은 기본이다.

아빠와 신나는 주말을 보낸 딸은 엄마 껌딱지 주간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오늘 병원에도 동행을 하셨다.
지난번 고생을 또 까먹었나 보다.
채혈하는 엄마를 구경하고, 지하 마켓에서 초콜릿 과자도 사고, 병원 로비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도 구경했다. 이제 남은 건, 진료.

종양내과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우리 뒷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답답하고 지루했나 보다.
순간 옆자리 할아버지가 큰 소리를 내셨다.

“거 이봐요! 여기 다들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이에요. 아니 이런데에 애를 데리고 와서 이 ㅈㄹ이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죄송한 게 많은 아이 엄마는 아이와 함께 복도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옆에 앉은 나까지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문득 엄마 옆에 앉아 호흡기 질환 환자용 호흡 안내 영상을 따라 하던 딸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오면 안 되는 건, 온갖 병원균이 상존하는 공간이라 아이에게 결코 좋을 게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데리고 올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곤 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악악 대며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 당당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이런 환경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을 그 부모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혼자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눈에는 의자위에 올려 놓은 옆자리 할아버지의 신발 벗은 발이 들어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카오에 가고 싶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