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드레스코드, 세상 불편한 옷.
우리 집 언니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송년모임이 있는 날이다.
야밤에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준비하고 세상 불편한 옷을 입고 오라는 단체 톡을 받고 하루 꼬박 옷장을 뒤졌다.
지난여름, 집을 정리하며 더 이상 내게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옷들을 싹 정리한 터라 정말이지 마땅한 옷이 없었다.
신혼 때 갔던 송년모임의 드레스코드가 평생 안 입어본 옷이어서 신랑의 군복을 입고 간 것이 생각났지만, 내년이면 불혹이신 우리 집 아저씨의 군복도 어디에 처박아 뒀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난감했다.
“세상 불편한 옷”을 두고 고민하는 엄마를 한참 동안 보던 딸이 한복을 입혀달라고 떼를 썼다.
급한 일로 아빠가 출근을 해야 하는 주말이라 어린이집 엄마들의 송년모임에 딸도 같이 가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까지 적용되는 콘셉트는 아니었는데, 여하튼 딸은 한복을 입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에게 한복을 입혀주다가 내게도 한복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복.
우리 부부의 첫 한복은 철저히 시아버지의 취향에 따른 작품이었다.
모두가 한복은 한 번 빌려 입고 마는 게 가장 경제적이라며 조언해줬지만, 우리는 기어코 한복을 맞추고야 말았다. 아니, 어른들 성화에 맞췄어야만 했다.
그래서 내 품에 온 것이, 미색 저고리와 자줏빛 치마 그리고 검은색 배자의 한복이었다.
유명 디자이너 숍에서 고르고 고른 본식 드레스보다 2부에 입은 한복의 반응이 더 좋았다.
신혼여행 후 첫 예배 날에도 우리 부부는 한복을 곱게 뻗쳐 입고 갔었더랬다.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로 한복을 꺼낼 일이 없었다.
아이 돌잔치에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었던 이유도 있고, 사실은 한복 상자를 볼 때마다 시아버지와의 불화로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나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던 이유도 컸다.
생각난 김에 입어나 보자 싶어, 옷장 꼭대기에 올려놓은 한복 상자를 내렸다.
여전히 고운 미색 저고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입고 갈까 싶었지만 치맛단이 끌려 망가질 테고 미색 비단 저고리에 음식이라도 흘리면 안된다며 남편이 만류를 했다.
한복을 다시 고이 접어 상자에 넣고, 정 옷을 못 찾으면 입고 가려고 생각해뒀던 블랙 미니드레스를 꺼냈다.
다행스럽게도 옷이 맞았다.
게다가 정말 다행스럽게도 불. 편. 했. 다.
숨을 딱 2/3만큼만 쉴 수 있는 이 불편함.
하지만 왠지 모를 편안함.
그래, 이 옷에는 좋은 추억들이 많다.
합격이다.
거울에 이리저리 나를 비춰보다가, 내 마지막 모습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의 대신 당신 생전에 입으셨던 것 중 가장 좋은 양복을 입고 가셨던 아빠처럼, 엄마는 당신이 가장 아끼시는 한복을 입혀달라고 하셨다. 문득 나도 생전 구경한 적도 없는 수의 말고 내가 가장 아끼는 블랙 미니드레스에 진주 귀걸이와 목걸이로 꾸민 채 입관을 해 달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제대로 유서라는 걸 쓰게 되는 날, 꼭 이 이야기를 넣어야겠다고.
즐겁게 놀러 가는 날 하필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블랙 미니드레스에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하이힐까지 꺼내 신으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취향이라는 것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한복 치마 펄럭이며 쉴 새 없이 떠드는 다섯 살 어린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또각또각 걸어가는 길.
잊고 있었던 순간들이 생각나며 왠지 모를 행복감에 7cm 하이힐이 운동화보다 더 가볍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