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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Dec 20. 2019

오늘 일찍 올 수 있어?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몸뚱이가 두 개면 좋겠다.

어제 낮까지 기관지 천식이던 아이가 반나절만에 폐렴까지 겹쳤다.
소아 응급실에서는 감염균 많은 병원에 있는 것보다 집에서 자체 격리하는 게 아이에게 더 좋다며 결국 퇴실을 시켰다. 아마 아이가 응급실 안에서 온갖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다니고 노래도 불러서, 제법 견딜만하다고 판단한 게 아니었을까 혼자 추측만 할 뿐이었다.

아이도 아이지만, 나는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았는데 다시 기침을 시작했다. 지난주에 지나간 초기 폐렴과 증상이 너무도 같아서 불안했다.

마침 오늘은 표적 항암과 종양내과 외래가 있는 날이었다. 지난번 폐렴의 경과를 확인해야 해서 아침 일찍 폐 사진을 찍어야 했다.

잠도 안 깬 아이를 친정엄마께 부탁드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 찬스라는 걸 쓸 수 있구나 싶어 감개가 무량했다.


또다시 바이러스성 폐렴에 걸렸다고 했다.
역시나 입원할 상황은 아니지만, 역시나 상태가 안 좋아지면 지체 없이 응급실로 들어오라는 당부가 있었다.
천근인지 만근인지 알 수 없는 몸뚱이를 끌고 병원 일을 다 보고, 약 제조까지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려버렸다.

...

내 몸뚱이가 딱 두 개면 좋겠다.
애도 돌봐야 하고 나도 돌봐야 하고.
집안일은, 아 몰라.
우는소리 앓는 소리로 중얼거리다가 문득 엄마와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중증 상이자를(중증 전상을 입은 국가유공자) 간호한 훈장처럼 엄마의 몸도 이미 만신창이 아니던가. 게다가 아이는 밥을 먹지 않겠다, 약을 먹지 않겠다, 호흡기 치료를 하지 않겠다며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던 중이었다.

오늘 저녁에 회사 송년회가 있다던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좀 일찍 올 수 있어?”
가능하면 주말 동안 나랑 아이랑 떨어져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말해놓고 보니, 나와 아이가 힘들다고 조퇴라도 하고 일찍 와달라고 한 게 오늘이 처음이다.

오늘은 표적 항암 허셉틴 16차가 있었다.
이제, 두 번 남았다.


남편은 조퇴는 커녕 회사 송년회를 불참하지 못했다.

장애가 아니고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던가.

푸흡.

일과 가정의 양립 따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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