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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an 06. 2020

앞머리는 이렇게 하시고요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머리를 기를 때는 아무리 지저분해 보여도 눈 딱 감고 한 번에 길러야 한다 했던가. 생전 처음 맞이하는 곱슬머리가 적응이 안되어 여러 번 다듬다 보니, 머리 기장이 애매한 채로 덥수룩했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목 뒤로 지저분한 뒷머리.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딸아이에게 파마를 해줬다.
어린아이 모발이라 금방 풀릴 거라 하더니, 금방 풀리진 않았지만 머릿결이 사자 머리털처럼 되어버렸다.

아이의 상한 머리를 잘라낸다는 핑계로 미용실을 찾았다.
동네에 새로 생긴 저가형 미용실인데 지역 카페에 평이 좋길래 모험 삼아 가봤다.
저가형이라고 해봐야 동네 곳곳에 있는 개인 미용실과 비슷한 금액 대였다. 오랫동안 머리카락이 딱히 없어 머리에 손댈 일이 없다 보니 내 단골 미용실 남은 회원권으로 남편이 멋을 내고 나는 동네 미용실 투어를 하게 되었달까.

아이는 작년 이맘때 했던 단발머리로 싹둑 잘랐다.
분명 같은 스타일인데 거울 속에는 다른 아이가 들어앉아있었다.
아이 다음은 내 차례.

“머리를 기를 거예요.
뒷머리만 잘라주세요.”

목소리만큼이나 싹둑싹둑 가위질도 시원시원한 미용사님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곱슬이 심하시네요.
기르시면 예쁠 거예요.”

“태어나 이런 머리는 처음이라 손질을 할 줄 몰라 그냥 기르고 있어요.
치료 받고났더니 머리가 이렇게 나오네요.
원래는 반곱슬이라 늘 볼륨매직을 한 단발이었거든요.
이마도 늘 훤하게 까고 다녔는데 곱슬머리가 계속 이마를 지저분하게 덮어서, 하하하.”

내 웃음에 같이 호탕하게 웃어주셨던 미용사님이 말을 이었다.

“길게 기르면 되게 예쁠 머리예요.
한동안은 앞머리를 이렇게 앞으로 내리세요.
일부러 이런 스타일을 한 것처럼요.
그리고 지금 뒷모습은 층을 많이 낸 단발 같아 보여요.”


비 오는 월요일.
한 손에는 아이가 타고 나온 씽씽이를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큰 우산을 들고,
내 코트 주머니를 꼬옥 잡고 따라오는 딸아이가 곁에 있었다.


<더하는 이야기>

2020년 1월 5일. 유치부에 처음 가던 날.

이제는 유치부다.

교회학교에서 받은 유치부 가방이 세상 자랑스러운 우리 집 여섯 살 언니.

나는 이제 언. 니.라서 우체부에 갈 수 있다나 뭐라나.


딸아, 우체부 아니고 유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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