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떡국을 먹자마자 약속한 예쁜 곳에 데리고 가 달라며 아이가 보채기 시작했다.
연휴라고 내가 늦잠을 자는 사이, 남편이 아이에게 떡국을 먹고 맛있는 차 마시러 좋은 곳에 갈 거라고 바람을 넣은 탓이었다.
맛있는 차가 있는 좋은 곳.
아드리아마이신 항암과 내 병원 일정과 친정아버지의 와병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2019년 새 해를 맞이했었다. 지인들의 출산소식과 새해 복을 기원하는 인사들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다가 기절하듯 잠에 들었던 그 날, 2018년 12월 31일.
눈을 떠 맞이한 2019년 1월 1일은 아드리아마이신 3차 5일째 되는 날이었다.
너무 슬프고 또 슬펐다.
기운 없이 멍하게 앉아있던 나에게 남편이 제안을 했다.
“나가자. 우리 000 호텔 로비에 가서 커피 마시고 오자!”
초점 없는 눈빛에 머리는 대머리.
게다가 한겨울.
어디 돌아다닐 몰골도 못되고, 면역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목에 털목도리를 두르고 손에는 털장갑을 끼고, 다리에는 토시도 신고, 머리엔 가발을 얹고, 마스크도 쓰고. 이 정도 중무장이면 괜찮을 거라며 부작용 방지약 꼼꼼하게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생각지 못한 외출에 한껏 신이 난 우리 집 언니는 백설공주 드레스를 입었더랬다.
그 잠깐의 일탈이 어찌나 행복했던지.
무엇 하나 쉽게 풀리는 것이 없어 힘들고 속상했던 그 날, 우리는 내년에도 또 오자는 약속을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로 또 가자 할 줄은 몰랐다.
빨리 외출을 해야 한다고 서두르는 두 부녀에게 서둘러 떡국을 끓여 냈다.
떡국을 먹고, 그 대단한 외출이라는 것을 하려고 머리를 감으려는데, 벌컥 화장실 문이 열렸다.
아놔-
아이야 아가 때부터 종종 엄마와 화장실을 같이 썼으니 그렇다 쳐도 아이랑 같이 화장실 문을 열고 머리 감는 걸 구경하는 저 인간은 뭘까 싶던 찰나, 남편이 말했다.
“아, 엄마는 머리를 세면대에서 감으시는구나. 어쩐지 2년 만에 세면대가 막힌다 싶었네.”
문득 매번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남편이 나에게 머리 감는 방식에 대해 구박을 하던 신혼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감는 게 죽어도 싫다고 우기던 새댁이 나였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사실, 꼬박 2년도 아니다.
1년 하고도 2개월.
이제 한 달이 더 남았다.
그리고 내 머리는 1년 전에 썼던 가발만큼 자랐다.
비록 적응 안 되는 곱슬이지만.
1년 전 오늘 쓴 글이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