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Jan 08.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던 길이었다.

아이가 오늘은 꼭 어묵을 먹어야겠다며, 우리 동 앞에 있는 떡볶이 트럭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필 비가 쏟아지는 저녁이었다.

결국 아이는 천 원짜리 한 장 손에 들고 룰루랄라 발걸음도 가볍게 그곳으로 향했다.

“떠꼬기 할머니!
이거 주세요.
추워서 이게 먹어야 해요.

떠꼬기 할머니. 나 이제 커서 병설 우치원 가요.
우치원 가면 친구들 아주 많이 생겨요.
떠꼬기 할머니 돈 벌러 나온 거예요?
할머니! 비 오면 추워서 감기 걸리니까 비 오면 나오지 마요. 나 걱정해요.

할머니. 추우니까 감기 걸리면 안돼요.”


종알종알 종알종알.

아이 덕에 나도 한 꼬치 입에 물고 뜨신 어묵 국물로 마음까지 축축한 몸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오늘은 비가 봄비처럼 내리는 1월 초, 네 개의 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아이는 가정보육 중이라 당연히 병원에 동행을 해야 했고, 운 좋게도 친정엄마 찬스로 모녀 3대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장장 다섯 시간이 넘게 병원에 있었다.
검사 중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 심장기능 검사 차례였다.
아이는 할머니와 대기실에 앉아있고, 나는 첫 번째 주사를 투입하고 검사실 앞에 앉아 다음 방사능 주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자원봉사 중입니다.”라는 경쾌한 인사와 함께 음료 카트가 핵의학과 안으로 들어왔다.
주스 한 잔을 가지러 갈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멀리서 내 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렌지주스 주세요.
하나 더 주세요. 할머니도 있어요.”

쪼그만 어린애가 한 손에 종이컵을 받아 들고 연신 등 뒤로 손가락질을 하며 더 달라고 하는 게 눈에 어찌나 잘 보이고 잘 들리던지.
혹시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신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음료 카트를 보고 주스 마시겠다고 가서는 시키지도 않은 것까지 챙겼다고 했다. 하긴, 아픈 엄마를 따라 병원에 오가면서 저 카트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오늘은 마지막 심장검사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시립어린이집으로부터 3월부터 등원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고,

우리는...
여전히 한 치 앞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새끼는 쑥쑥 크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이 뇌리에 맴맴 도는 밤이다.


2020년 1월

우리집 어린이는 만49개월

매거진의 이전글 앞머리는 이렇게 하시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