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아이와 동네 책방에 갔다.
수많은 어린이책 사이에서 권정생 선생님 쓰신 오소리네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
내게도 꽃밭이 있는 걸 모르고 다른 꽃밭을 흉내 내다가, 내게 이미 꽃밭이 있다는 걸 깨닫는 오소리 부부의 이야기다.
정승각 님의 그림도 좋아서 한 권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렇게 한 이틀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었나 보다....
하루하루 감정이 널을 뛴다.
어제는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신났다가, 오늘은 내가 이 꼴이 된 외부 원인들이 생각나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장 최근에, 생애 최고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받고 보니 쓰레기 더미 옆에 지어 올라가는 동이었다. 그것도 쓰레기 출입구가 동 주출입구 앞으로 지나는 집.
그 동에 당첨된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하자 건설사는 그제야 사실을 알리고 계약서를 받았다. 미고지 분양이었으나 우리를 보호해줄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알고 넣었으면 분하지라도 않지, 그 큰 돈을 주고 알지도 못했던 그런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로또 맞았네.
뭐 돈 깎아 달라고?
그러면 청약을 넣지 말았어야지.
태어나 그렇게 큰 좌절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자살하겠다고 번개탄을 들고나갔다가 경찰에게 잡혀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발버둥을 쳤지만 대형 건설사는 강했고 현행법은 합리적이지 못했다. 내 집 마련을 꿈꾸며 결혼해 5년여 동안 무주택 전세난민으로 고생 고생하며 버틴 보람도, 앞으로 5년 동안의 기회 모두 박탈당했다.
이때를 놓치면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거라며 청약을 넣었던 남편은 저런 시공사와 저따위 조합이라면 들어가지 않는 게 상책이라며 계약을 포기했고, 막장 같은 재건축조합 때문에 계약자들이 고생한다는 소식에 “나중엔 속이 쓰릴지라도..”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는 아직도 머릿속까지 쓰리고 쓰리다.
어제 아이와 산책길에 본, 예쁘게 리모델링한 집이 생각났다.
“만약 나에게 우리 집이 생긴다면 말이야...”
메신저에서 남편에게 한참을 종알거리다,
“근데 우리에게 그런 날이 올까?”라는 내 물음에 남편이 답했다.
올 거라고. 남들 신경 안 쓰고 살면서 왜 그러냐고.
신경 안 쓴 게 아니다.
내가 더 초라하기 싫어서 외면한 거지....
오소리 아저씨는 오소리 아줌마의 바람대로 괭이질을 했다.
여기를 찍으면 꽃이 있었고, 저기를 찍으려 보아도 꽃이 있었다.
오소리는 좋겠다.
꽃밭이 있는 집도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