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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Feb 23. 2020

신천지, 당신들에게

오늘의 수다

당신들이 약속의 땅이라 일컫는 동네에 사는 사람이에요.

이 도시에서 당신들의 존재를 알고 지낸 지 벌서 10년이 훌쩍 넘었군요.

난 아직도 우리 동네 청계산이 어떻게 성경에 나오는 시내산이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교리가 좋다는 당신들을 회유할 생각도 걱정할 마음도 없었어요.

아, 비난과 조롱은 했네요. 모나미라고.

알죠? 지역 커뮤니티에서 당신들을 모나미들이라고 부르는 거.

통일된 드레스코드로 무리 지어 다니니, 뭐랄까 정말 모나미 볼펜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 같아 보이고 그래요.

정말로.

더 솔직하게 내 소개를 하자면, 당신들이 약속의 땅이라 하는 그 동네에서 제법 큰 교회에 다녀요.

가족도 아니면서 가족이라고 무리 지어 등록했다가 신분이 들통났다는 건, 이미 여러 번 들었어요.

자신의 신분을 속여가며 타 집단에 잠입해 와해시키는 게 어떻게 성스러운 일인지도 나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내가 이걸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당신들의 가장 큰 거점이 있는 마트 건물에 장 보러 다니고, 병원도 다니고, 가끔 외식도 하러 가요.

당신들이 사용하는 왼쪽 엘리베이터에 아이랑 무심코 탔다가 개념 없이 당신들 것을 이용했다고 욕도 얻어먹었어요. 근데, 사실 그거 당신들 전용 아니지 않나요? 당신들의 예배시간이 겹치면 모두가 건물 이용에 어려움을 겪어서 그렇게 분리해 놓은 거지. 사실 특정 시간에 엘리베이터 분리하기로 했을 때 당신들에게 좀 고맙기도 했어요. 정말 불편했거든요.

일요일에 장 보러 그 건물 갔다가 나와 내 아이에게 욕을 해 대는 사람들(가출교인의 부모들)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채증 하는 당신들인지 경찰들인지를 볼 때마다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이 불쾌했지만, 밖에 나와 찬바람이 좀 속에 들어가면 이해가 되곤 했어요.

가족이 깨박살이 났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다시는 일요일에 여기 오지 말아야겠다...


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난리였죠.

난리였었죠. 난 이렇게 소강상태로 들어가나 싶었어요.

첫 확진자 나왔을 때 쟁여놓은 마스크를 보며 내가 괜한 극성을 부렸나 싶었으니까요.

상황이 이렇게 뒤집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네요.

31번 확진자가 신천지 교인이고, 대구 사람인데, 우리 집 아저씨의 직장 근처에 방문했더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냥,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네.' 이 정도.

하지만 순식간에 확진자가 늘어나는 걸 보니 어이가 없긴 하네요.


욕을 하도 들어 먹어서 배가 부르죠?

당신들이 신천지 교인이라서 핍박받는다고 생각한다면서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도 아니고, 청도에서 갑자기 사망자와 확진자가 늘어났을 때 당신들에게 분개하는 나 자신을 잠시 들여다봤어요. 당신들이 내가 싫어하는 신천지여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당신들이 신천지여서 그렇게들 비난을 하는 것일까.

특정 종교를 싸잡아 비난하면 안 된다는 이들의 주장을 읽으며, 팔자 좋은 소리들 한다고 분개하기도 했어요.

근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들이 비난을 받는 건 당신들의 종교 때문이 아니에요.

모두가 방역과 보호를 위해 최선인 와중에 모두를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비난인 거죠.

하필 기사마다 신천지 딱지가 붙은 건, 급격하게 늘어난 유증상자와 확진자 수와 신천지 교인의 비율을 보면 알 수 있겠죠.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당신들을 비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집단 방역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모든 것을 욕하는 거라고 이해하는 편이 서로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해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게 아니라고요.


신천지는 영생불사를 믿는다면서요?

핍박을 견디면 복을 받고 말이죠.

나 진짜 진지하게 궁서체로 말하는 건데, 지금은 정신승리하고 있을 타이밍이 아니에요.

솔직히 나는 이 시국에 광화문 같은데 모여 집회를 하는 것도 쓸데없는 정신승리라고 보는 사람이니까, 이해에 참고가 되길 바라요.

대구 어느 병원에선가는 어머니께 장기이식을 한 교인이 확진 자였더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그래요. 딸이 엄마에게 바이러스를 선물한 거냐 비아냥거리는 댓글도 읽었어요.

진심으로, 두 모녀 그리고 관련된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했어요.

부탁이에요. 아픈데 도망가고 숨기고 그러지 말아요.

자가격리면 남들처럼 제발 집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키고요.

당신들은 가출했다가 집에 잡혀오면 또다시 어떻게든 탈출한다지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러지 마요.

영생불사인지 14만4천인지도 살아야 하는 거지.

그리고 제발, 정부와 사람들을 믿어봐요.

이거 다, 다 같이 살자고 이러는 거잖아요.


다음 주에는 아이 때문에라도 당신들이 활보하고 다녔을 중심상가에 나갔다 와야만 하는데, 솔직히 겁이 나네요. 우리 집은 이미 지난달부터 주일성수를 하지 않고 있어요.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는 게 좋으니까요.

항간에 떠도는 루머로는 이참에 기성 종교단체로 바이러스를 퍼트리러 간다는 말이 있던데, 부디 헛소문이길 바라요. 그리고 설령 사실이라 한들 소용없을 거예요.  


부디 죽지 말고 살아요.

숨지 말고.

그만 좀 돌아다니고.

가출한 친구들은 제발 집으로 좀 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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