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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Feb 26. 2020

아 쫌!

대환장파티-코로나19

 !
 여기 있는 사람들이 놀러 나온 걸로 보여?”

마스크 쓴 사람들로 버글버글한 마트에서 아이에게 화를 냈다.
하루 종일 엄마에게 혼이 났던 아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이야. 이재명 완전 사이다!”
아침부터 정신이 맑아지는 소식을 접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우리 동네 곳곳에 위치한 신천지 사무실로 출동해 방역도 하고 신도 명단도 확보하고 있다는 기막힌 뉴스였다.
사실 사무실도 사무실이지만, 이참에 동네 어딘가에 많이 있을 교인들의 집단거주지도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들었더랬다.
어쨌든. 친구들에게 “외쳐 갓재명!” 따위의 카톡을 날리다가, 문득 제정신이라는 것이 돌아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우리 동네에만 1만 명이 넘는 신천지 교인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 도시가 그들의 성지라고 한다.
전국이 코로나 19로 난리인데, 그들의 본거지인 이 도시에서는 아직 확진자가 없다.
확진자도 없고 자가격리 중인 사람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이 믿을 수 없는 청정함에 모두가 몸을 사리며 떨고 있을 뿐이다.
명단이 확보되고 본격 격리와 검사가 진행되면, 어쩌면 정말로 헬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 것이다.

하루 종일 집안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역시나 나는 독박 육아 중이라, 어쩔 수 없었다.
시내 곳곳에 보이는 경찰차와 소방차와 구급차와 경찰들을 보며 아이는 한껏 신이 났다.
경찰 아저씨를 본 김에 누가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린 걸 신고하겠다고 방방 뛰기도 했다.
타들어가는 엄마 속은 모르는 거지.
그래서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에게 혼이 났다.
붙임성이 좋아서 모르는 할아버지랑 대화를 하느라 엄마를 안 따라와서 혼나고.
예뻐 보이는걸 다 만져보고 싶어 해서 혼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장 보러 나온 김에 상가 구경하고 가겠다고 떼써서 혼이났다.

...

마트 안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구와 엘리베이터 주변은 배송 예약된 상품들로 가득했는데, 전부 생수와 고추장, 라면, 햇반 같은 것들이었다.
계산대는 당연히 줄이 길었다.
우리도 한 보따리 가득 장을 보았다. 쌀도 사고 고기랑 햄이랑 두부도 더 구입했다. 살면서 이렇게 대용량으로 한 번에 장을 본 게 처음이었다.
이걸 다 들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당일배송이 끝났다고 하여 방도가 없었다. 장바구니에 꽉꽉 눌러 담아 들쳐 메고, 또 들고, 차까지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그때 아이가 나를 잡아 세운 것이다.
“엄마 나 잠깐 응 구경 좀 하고 가고 포파요.”

늘 이곳에 장을 보러 나오면, 아이가 구경 다니는 코스가 있다.
문방구 찍고 과일가게 찍고 그다음은 카페.
아이는 정말 오랜만에 나온 김에 습관대로 가보고 싶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화가 났다.
마치 피난을 준비하는 듯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빽 소리를 질렀다.
네 눈에는 이게 지금 놀러 나온 것 같으냐고.

아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어쩌다 보니 소속된 기관 없이 두 달째 가정보육 중이다.
아이는 늘 심심해했다.
그래서 기껏해야 하루에 한 번 정도 나가는 산책을 아이는 손꼽아 기다렸다.
놀이터로 양재천으로 마트로 도서관으로 공원으로 그렇게 늘 크게 돌아다니며 온 동네 길고양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던 게 그간의 루틴이었다.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며 그마저도 나가지 못한 날이 늘어났다.
아이는 “심심해요.”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점점 아기 흉내를 내는 놀이를 하고,
엄마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면 “엄마 집에 가서 나 좀 안아줘.”라던가 “엄마. 나 믿어봐. 나 믿으면 사탕 줄게.”같은 말을 건네곤 하는데, 들으면 짜증이 나면서도 짠한 이 복잡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까.


...

교육부 산하 기관들은 전부 개학을 한 주 미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산하인 어린이집은 어떻게 하려나 한참 걱정이었는데, 일단 개학은 예정대로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손꼽아 기다리던 입학식은 없다.
이미 에너지가 고갈된 내 입장에서는 일정이 미뤄지지 않아서 감사할 뿐이나, 일정이 미뤄지지 않았다 한들 아이를 보내기도 꺼림칙한 상황에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다.

한동안 정신건강을 위해 발길을 끊었던 지역 커뮤니티를 다시 들락거리게 됐다.
습관이라는 게 어찌나 쉽게도 깨지던지, 나는 뭐한다고 여기에 들어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나 싶으면서도, 혹시나 새로운 동네 소식이 올라왔을까 싶어 발길을 끊지 못하고 있다.
역시나 사람들은 다양하다.
꼭 신천지가 아니더라도 서로 조심하며 이 위기를 잘 지내자는 글에 대통령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댓글이 달리고, 온 나라를 패닉으로 집어넣은 신천지를 특정 지역과 주사파와 연계한 음모론, 도지사 만세를 외치는 글이라던가, 이 작은 동네에 어느 가게가 신천지가 하는 것이라는 소문까지 하여간 다양도 하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이 와중에 정신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이 들다가 문득 저 집에도 어린아이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 지역 말고도 이미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임시 휴원에 들어갔다. 이런 때엔 아이를 데리고 갈 곳도 마땅히 않다. 일하는 엄마라면 당장 아이를 부탁할 곳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당장 매일매일이 전쟁인데, 저 양반들은 팔자도 좋네 싶어 실소가 삐져나왔다.

증오 건 비판이건 무엇이건.
일단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며 살고 봐야 하지 않나 싶은 내 생각은, 당장 어린애 데리고 살기 급급한 근시안적인 것일까.


다 모르겠고.
그냥 너무 힘이 든다.
주저앉아 울고 싶을 만큼, 힘들다.


경기도에서 명단을 가져가고 바로 다음날, 단체 합숙을 하던 신천지 20대 교인 두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이의 어린이집이 폐원을 하지 않았다면, 동선이 겹칠 위치에 있었다. 등 뒤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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