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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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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자. 생각해봐.
자기가 치질 수술을 했어. 수술하러 병원 가는데 우리 엄마 아빠가 오셔서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시고, 수술 후에 피똥 싸며 회복을 해야 하는데 그 병시중을 우리 엄마가 해주신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아이 출산을 앞두고, 양가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연락드리라는 요구를 했더랬다.
양가 그 극성맞은 어른들이 나를 또 얼마나 볶아 드실지 뻔히 아니까. 시어머니가 친척 누구 산후조리를 해주신 적이 있다는 말을 계속하길래 꼭 이해를 시켜야만 할 것 같았다.
너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마침 컵라면을 흡입 중이던 남편은 조용히 라면을 싱크대에 버렸고, 양가 어르신들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병원으로 오실 수 있었다.

바로 어제, 수술 전 마지막 외래가 있었다.

초기 암으로, 미세 석회를 타고 암덩이가 계속 커지고 있다고 했다. 나이가 젊을수록 공격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니 전절제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같이 앉아 결과를 들은 남편은 초기라서 다행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꺼냈다.


출산보다 심각한 상황이어서인지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여자의 일에 역지사지가 안 되는 저 남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쥐꼬리만큼이라도 이해를 할까 고민하다 문득 이 생각이 떠올랐다.

“자 들어봐. 자기가 고환암에 걸렸어. 하필 이게 애매한 위치에 크기도 크게 잡혀서, 그 좋고 많은 치료방법들 다 못써보고 고환 한쪽을 다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어. 나이가 젊어서 공격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잘라내야 한다고.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유전자 검사 결과는 가족력도 없고 유전에도 이상이 없고, 암 걸릴만한 생활습관도 없는데  한쪽을 다 잘라내야 한대. 딱 하나 거슬리는 게 있다면 결혼 내내 나와 내 집안 식구들이 여러 가지로 미치고 환장하게 만들었던 건데. 기분 더럽게 나쁜 상황에 내가 옆에서 다행이라고 네가 암에 걸린 게 내 탓이냐고 종알종알 떠들어대면 어떨 것 같아?”

이게 바로 어제 내가 너한테 당한 일이야.


2018년 8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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