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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21. 2020

할머니가 왔다!!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재희네 할머니 왔다!!”

코로나 19로 어린이집 정식 개원이 늦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3월 중순, 그다음에는 3월 말, 이제는 4월 초.
아이가 다니던 발도르프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이 12월 말로 폐원을 하여 1월부터 가정보육 중이었던지라, 코로나 19로 인한 개원 연기 소식에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데...’

그간 병원 진료가 있을 때마다 아이는 외할머니와 병원 주차장에서 엄마를 기다렸고, 평상시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 했다. 이 짓도 한두 번이지, 온 집을 네발로 뛰어다니는 애를 보며 이건 아니다 싶어 긴급 보육을 신청했다.


가정보육이 가능하면 가정보육을 권한다던, 얼굴 한 번 못 본 담임 선생님께 사실은 항암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엄마라는 걸 밝히며 부득불 긴급 보육 등원을 시작한 지 이주일이 넘어간다.

하원 시간.
점심식사를 마치고 반으로 돌아와 양치를 하러 가는 아이들 사이에 우리 아이가 있었다.
“엄마 다아!!”
‘오늘도 내가 언니들 틈에서 얼마나 의젓하게 잘 놀았는지 엄마가 알면 깜짝 놀랄걸요!’ 라는듯 의기양양한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내 귀에 들리는 한마디.
“어. 재희네 할머니가 왔다!!”
선생님이 바로 정정해주셨만, 그 아이는 계속 할머니라고 했다.
“아닌데~ 엄만데~”
놀리려고 그런다는 걸 알아서 장난처럼 받아주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머리에 남아 속이 상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야, 그래서 내가 매직을 할까 잠깐 심각하게 생각했지 뭐야. 프하하하하하”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동갑내기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애가 뭘 알아서 그랬겠냐.”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건데, 그걸 또 애랑 똑같이 그러는 건 또 뭔가 좀 그렇더라고.”
공감해주는 이와 한참 떠들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래도 마음과는 별개로 머리에 무언가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아마 머리가 짧고 곱슬이어서 할머니가 연상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생각도 이내 사라졌다. 딱 내 머리 길이 즈음에 펌을 시도했다가 머리가 다 타버린 환우를 나는 알거든. 무조건 참고 기르는 게 답이다. 참자...


“우리 엄만 예쁜데. 왜 자꾸 할머니라고 하지?”
오늘도 아이는 속상해했다.
엄마도 빨리 머리가 길어지면 좋겠다고도 했던가.
항암 탈모 후에 예전보다 더 까만 머리가 나서 좋았는데, 곱슬머리는 아직도 좀 감당이 안된다.


어서 자라라 머리야.
대머리 해파리 소리 들을 때는 크게 속상하지 않았는데, 이번은 좀 슬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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