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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13. 2019

인생은 꽃처럼 아름다운가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그러니까 다른 사람 아무도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들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민트 씨 몸만 생각해. 알았지?”

오늘도 들었다.
여자는 아프면 그냥 혼자라고.
네 몸만 걱정하라고.
밥 한 번 먹자고.

어제오늘은 묵은 짐을 정리했다.
유모차와 스팀청소기를 지역 장터에 내놓고, 아이 옷들을 꺼내 남길 것과 친구네 아이 줄 옷, 교회 바자회에 기부할 옷, 버릴 옷으로 다 나눠 놓았다.
겨울이 오면 압축해 놓은걸 풀어 서랍에 넣어두고 여름 가을 옷을 세탁해 압축해 올려놔야지.
아니, 그렇게 하라고 신랑 시켜야지.

집을 들들들 뒤지며 빨래 건조기 놓을 곳을 물색했는데, 위치가 영 마땅치 않다. 그래도 입원 전에는 건조기는 꼭 집에 들여놓을 계획이다.
빨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늘 나오니까.

아이의 등 하원 도우미를 신청해야 하는데 매번 깜박한다. 일단 아이 돌봄 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하라는데, 노트북이 어디 있더라...
노트북 켜면, 꼭 시립 어린이집에 대기도 걸어놔야겠다. 원래 내년에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나 병설유치원에 보낼 계획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상황이 다 달라졌으니까. 공육을 할 품도 여유도 없고, 일찍 하원한 아이를 케어할 건강도 없을 테니까.

또 뭐가 있을까?
입원 전에, 몸이 안 불편할 때 준비해놔야 하는 것들이...

아, 내일은 한살림에 가서 잊지 말고 결명자와 보리차를 사다 놔야지.
그리고..


...

나를 그토록 미워했던, 나 역시도 그만큼 미워했던 시아버지의 카톡 상태 메시지가 가끔 생각나곤 한다.

인생은 꽃처럼 아름다운가

시아버지는 60대 중반의 나이에 폐암 말기로 돌아가셨다. 수술도 불가능한 말기였고, 판정 당시 4개월 시한부 인생이셨으나 이후 3년 정도 생존하시며 큰아들 결혼도 보시고 첫 손녀도 안아보셨다.
(그래, 그 겨울에 70일 된 아이 데리고 시부상 치른 여자가 나네)

인생은 꽃처럼 아름다운가

시아버지의 카톡 상태 메시지였다.


...

주변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내 몸 걱정은 주로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나 할 수 있다.
아이가 잠이 들고 깜깜한 방에 누워있다 보면 순간 울컥울컥 뭔지 모를 감정이 올라온다.
인생이 꽃처럼 아름다운지 안 아름다운지를 생각할 여유가, 어린아이가 딸린 내게는 없어 화가 난다.
이 밤도 또 속으로 화를 내다 잠이 들겠지.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단 나을 것이다.
내일의 할 일도 잊지 않을 거다.
여기에 적어놨으니까.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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