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 문맹의 삶을 누렸으면 하면서도, 내심 아이가 글자와 숫자를 깨달아서 내가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싶은 양가감정에 하루에도 몇 번씩 속에서 천불이 난다.
내가 저 나이에 스스로 한글을 깨쳤었건 어쨌건 저 아이는 그저 내 딸로 태어난 그 자신일 뿐인데 말이다.
아이는 내가 아니라고 아이에게 기대를 걸지 말고 내 스스로에게 기대를 거는 엄마가 되야겠다 다짐을 해보지만, 그럼에도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그 후에는 내가 아프면서 아이를 잘 챙기지 못해 저리 된 건가 싶어 자책을 하게 된다.
오늘은 낮잠을 재우다가 내가 잠에 들어버렸다.
잠결에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요란해 눈을 떠보니, 무슨 일이 있는 거면 119로 회신해달라는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아마 아이가 나 몰래 119에 걸었다가 바로 끊은 것 같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핸드폰으로 옥토넛을 보여달라는 걸 보여주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알려줬으니 스스로 눌러서 풀라고 했는데, 아이가 아직 숫자를 모르니 안 풀어준 거나 진배없지.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놀아주지도 않고 잔다며 긴급전화라니. 오늘도 내 혈압은 잔잔할 틈이 없었다.
“우이 엄마가 아파요. 빨리 와주세오.”
119에 신고를 하는 방법은 항암을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알려줬다. 아이가 만 세돌이 되던 날 항암 탈모가 찾아왔으니, 아이 나이 다섯 살에 119에 신고하는 법을 배운 셈이다.
“우리 엄마가 아파요. 빨리 와주세요.” 아이가 이 두 마디만 할 수 있다면 위치야 추적해서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구급대원들이 오면 참고할 비상연락처와 이름 병원 환자 번호 같은 것을 적은 쪽지도 써서 집 안에 비치해놨었다.
그땐 그랬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항암을 하는 동안 항암제의 독성으로 심장 기능이 나빠져서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그렇게라도 병원에 가야 했으니까.
남편은 회사일로 늘 늦고, 그래서 늘 아이랑 둘이 있었으니 혹여 아이랑 둘이만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아이를 통해서라도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아 알려준 것이었는데...
아오...
재난지원금 들어온 건 또 귀신같이 알아서는 만날 만날 외식만 노래 부르는 저 여섯 살 어린이 덕에, 오늘도 내 심장은 바운스 바운스 혈압이 널을 뛴다.
가족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나와 운동을 했다.
요 며칠 몸살 기운이 돌아 운동을 쉬었더니, 금방 숨이 차기 시작했다. 스마트밴드를 하고 있었다면 분명 지방 연소나 심장 강화 메시지를 띄웠겠지.
하지만 왠지 오늘은 그 타는듯한 심장의 느낌이 불안하게 다가왔다.
정말로 이렇게 운동을 해서 안 좋아진 심장의 기능이 개선이 되고 있는 걸까 의심이 들었고, 혹여 둔탁하게 심장이 타는듯한 그 느낌을 나 혼자 심장이 다시 튼튼해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괜스레 불안했다.
표준치료가 끝났고 완벽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싶으면서도, 두렵기는 매한가지다.
여전히 무섭다.
아이는 오늘도 두 눈에서 눈물 쏙 나게 혼이 났다.
...
119 대원분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