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May 23. 2020

그러라고 알려준 119가 아니었다고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 문맹의 삶을 누렸으면 하면서도, 내심 아이가 글자와 숫자를 깨달아서 내가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싶은 양가감정에 하루에도  번씩 속에서 천불이 난다.
내가  나이에 스스로 한글을 깨쳤었건 어쨌건  아이는 그저  딸로 태어난  자신일 뿐인데 말이다.
아이는 내가 아니라고 아이에게 기대를 걸지 말고  스스로에게 기대를 거는 엄마가 되야겠다 다짐을 해보지만, 그럼에도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후에는 내가 아프면서 아이를  챙기지 못해 저리 된 건가 싶어 자책을 하게 된다.

오늘은 낮잠을 재우다가 내가 잠에 들어버렸다.
잠결에 핸드폰 진동 소리요란해 눈을 떠보니, 무슨 일이 있는 거면 119 회신해달라는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아마 아이가  몰래 119 걸었다가 바로 끊은  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핸드폰으로 옥토넛을 보여달라는 걸 보여주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알려줬으니 스스로 눌러서 풀라고 했는데, 아이아직 숫자를 모르니  풀어준 거나 진배없지.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놀아주지도 않고 잔다며 긴급전화라니. 오늘도  혈압은 잔잔할 틈이 없었다.

우이 엄마가 아파요. 빨리 와주세오.”
119 신고를 하는 방법은 항암을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알려줬다. 아이가  세돌이 되던 날 항암 탈모가 찾아왔으니, 아이 나이 다섯 살에 119 신고하는 법을 배운 셈이다. 
우리 엄마가 아파요. 빨리 와주세요.” 아이가   마디만   있다면 위치야 추적해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구급대원들이 오면 참고할 비상연락처와 이름 병원 환자 번호 같은 것을 적은 쪽지도 써서  안에 비치해놨었다.
그땐 그랬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항암을 하는 동안 항암제의 독성으로 심장 기능이 나빠져서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그렇게라도 병원에 가야 했으니까.
남편은 회사일로  늦고, 그래서  아이랑 둘이 있었으니 혹여 아이랑 둘이만 있다가 문제가 생기면 아이를 통해서라도 신고를 해야   같아 알려준 것이었는데...
아오...

재난지원금 들어온 건  귀신같이 알아서는 만날 만날 외식만 노래 부르는  여섯 살 어린이 덕에, 오늘도  심장은 바운스 바운스 혈압이 널을 뛴다.


가족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나와 운동을 했다.
 며칠 몸살 기운이 돌아 운동을 쉬었더니, 금방 숨이 차기 시작했다. 스마트밴드를 하고 있었다면 분명 지방 연소나 심장 강화 메시지를 띄웠겠지.
하지만 왠지 오늘은  타는듯한 심장의 느낌이 불안하게 다가왔다.
정말로 이렇게 운동을 해서 안 좋아진 심장의 기능이 개선이 되고 있는 걸까 의심이 들었고, 혹여 둔탁하게 심장이 타는듯한  느낌을  혼자 심장이 다시 튼튼해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괜스레 불안했다.

표준치료가 끝났고 완벽히 일상으로 돌아왔다 싶으면서도, 두렵기는 매한가지다.
여전히 무섭다.



아이는 오늘도 두 눈에서 눈물 쏙 나게 혼이 났다.

...

119 대원분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힘내!라는 말은 사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